이종상 화가
불암산 초가집에 살면서 아이들이 성장해서 다 예술고등학교에 다니니까 서울로 나와야 하겠는데 또 그게 자연히 되더라고요. 돈이 뒤에서 쫓아오는 거예요.
제가 옛날에 뭔가를 해준 데서 뜻하지 않게 사례금을 보내온다든지 하는 거예요.
아이들 학교 근처에 집을 하나 사려고 복덕방 가서 물어봤더니 평창동 집들은 다 2백 평이 넘는데 제일 작은 60 몇 평 되는 게 하나 있대요. 가봤더니 짓다 만 집이에요.
집사람하고 상의도 않고 무조건 계약을 해놓고 집사람한테는 “나 집에 안 들어간다. 나쁜 짓 안 하니까 걱정 마라” 혼자서 미장하고 칠하고 용접해서 집을 완성했어요. 처음에는 그 초가집을 팔아서 나머지 집값을 치르려고 했어요. 평창동 집값의 10분의 1만 받아도 내가 빚을 안 지겠더라고요. 그런데 10분의 1은커녕 아예 돈이 안 되는 거예요.
‘할 수 없다. 큰 작품 그릴 때 화실로 쓰자. 장인어른이 정년퇴직하시면 공기 좋은 데 와서 사신다고 하셨으니까 장인어른 드려야겠다. 그게 내가 보은하는 길이다’
그래서 화실 짐은 초가집에다 두고 내 월급으로 조금씩 갚아나가기로 하고 빚을 얻어서 평창동 집으로 이사를 했지요. 그런데 세월이 지나니까 그 초가집 앞에 고층아파트가 들어서더니 그 동네가 택지지구가 됐어요.
얼마 전에 그걸 팔았는데 그 돈으로 평창동 집을 몇 채는 사겠더라고요. 그걸 제가 미리 알고 그렇게 했을까요? ‘아, 선생님들이 돈은 살아있는 생명체라고 그랬지, 귀가 밝다 그랬지, 눈이 밝다 그랬지!’ 이것을 제가 실제로 경험한 거예요.
우리 애들이 거기 화랑초등학교에 다닐 때 제가 육성회장을 했는데 담임선생님이 가정방문을 오시다가 도로 돌아갔어요.
‘육성회장이 이런 데서 살 리가 없다’ 하면서. 그래서 우리 집에 가정방문을 오신 선생이 한 분도 없어요. 그런데 그 집이 나중에 저에게 효도할 줄 어떻게 알았겠어요.
삼성 이병철 회장이 생존해 계실 때 태평로 삼성그룹 본관에 ‘십장생도’를 제가 그렸어요. 그분이 워낙 그림을 좋아하셨어요. 조용히 오셔서 작업하는 것을 올려다보곤 하셨는데 가끔 같이 점심 먹자고 하시면서 회장실로 부르셨어요.
어느 날 국수를 드시면서 그 양반이 우리 스승님과 비슷한 말씀을 하시는 거예요. “사람들이 나를 보고 돈을 많이 벌었다고 하지?”
제가 선뜻 대답할 수도 없어 아무 말 못 하고 국수만 먹고 있는데 “나는 평생 돈 벌어본 적이 없어” 그러시는 거예요. 속으로 ‘거짓말도 참 어지간히 하신다’고 생각하면서도 가만히 있는데 “나는 한 번도 돈 번 적이 없지. 그런데 하나 번 게 있지” 그제야 제가 말문이 터져서는 “뭘 버셨는데요?” 했어요.
그랬더니 한참 침묵을 하시다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