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재진 전영진어가 대표
농약 없이 채소를 키워내고, 식당 테이블도 다섯 개만 운영하고, 음식 설명을 일일이 해주면서 <전영진어가>를 운영했는데 ‘내가 과연 잘하고 있는 걸까?’ 늘 고민이 되었죠. ‘세상은 날로 자극적이고 빠르게 변해가는데…’
우연히 시골 서점에 들러 잡지를 펼쳤는데 인터뷰 하나가 눈에 들어왔어요. ‘살로몽 운트호프’ 오스트리아의 가장 오래된 와이너리로 9대째 전통을 이어가고 있는 곳이었어요. 1792년부터 지금까지 화이트 와인의 우아한 품질을 유지해 온 비결을 묻자 와이너리 대표는 이렇게 답하더군요.
“단순하다. 좋은 와인은 좋은 포도가 만든다. 좋은 포도를 기르는 건 좋은 포도밭이다. 좋은 포도밭에는 그에 적합한 종의 포도를 심어야 한다. 복잡할 것 없는 원칙이다. 하지만 많은 사람들이 이를 따르지 않곤 한다. 인기 있는 품종으로 잘 팔려는 욕심 때문이다. 와인 양조에는 레시피가 따로 없다. 와인 생산자가 해야 할 일이란 매일 포도밭에 나가 살피고 관찰한 ‘사실’대로 따르는 것이다. ‘내가 와인의 맛을 절대로 더 좋게 만들 수는 없다’는 아버지의 이 양조 철학이 우리의 큰 자산이라고 생각한다”
수확할 것 같을 때 포도밭이 당신에게 보내는 신호가 있는가?” 물었어요. 그 물음에 대표는 “대량 생산을 하려면 살충제를 써야 한다. 이 땅에 다양한 생물이 살고 있다면 우리가 제대로 하고 있다는 뜻이다. 소량 생산은 우리가 지켜야 할 가장 중요한 전통이다”
이 인터뷰를 보면서 제가 얼마나 위로받았는지 몰라요. 옳고 그름의 문제가 아니구나! 내가 하는 일에 가치를 담는 게 중요하구나! 그 덕에 많은 유혹을 뿌리치고 묵묵히 걸어갈 수 있었던 것 같아요. <전영진어가>의 창업주인 할머니가 정하신 원칙과 그 원칙을 잘 지켜온 어머니의 오랜 희생 덕분에 저 또한 남들이 보기에 무모한 선택을 기꺼이 할 수 있었어요. 주변에도 ‘쉽지 않은 선택이어도 원칙을 중시하는’ 사람들이 많아졌으면 좋겠어요.
유재진 전영진어가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