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 때려치워라!”

이달수 자영업

당시 농촌의 상급학교 진학률은 형편없었다. 대도시 인근인 우리 동네도 마찬가지였다. 초등학교만 졸업하면 둘 중 하나는 저절로 농사꾼이 되었다.
6년 내내 1, 2등을 다투던 나에게도 중학교는 먼 이야기였다. 까만 모자와 교복을 입고 새 가방을 든 친구들이 재잘거리며 읍내로 갈 때, 나는 밭고랑에 앉아 땅을 쪼며 분노 비슷한 걸 삼켰다.

부모님은 내리 딸 둘만 키우다 얻은 큰형만 대수로 여겼다. 기다리던 아들이요, 손 귀한 집 종손. 그러나 그 아래 아들들은 우수리였다. 큰형은 고등학생이었지만, 둘째 형은 도시로 밥벌이하러 갔고, 나에겐 초등학교 졸업 선물로 자가용 지게가 주어졌다.

아버지는 오금을 박았다. “공부 그거 다 소용없는 기라. 구장 집 아들 봐라, 싸움질하느라 만날 지서만 안 들락거리더냐. 들머리 집 봐라, 아들 셋이 논밭에 붙어사니 그 집 형편이 나아지지 않더냐. 사람은 분수대로 사는 기라”
그럴듯했지만 ‘왜 하필 싸움꾼을 갖다 대시나’ 재실지기 아들은 우리보다 형편이 어려워도 잘만 학교에 다니고 있었다.

‘이까짓 땅 파는 것만 한 일, 어디 가면 못 할까’ 싶어 도망칠 생각도 했다. 그러나 대처로 뛰쳐나갈 용기는 없었다. 하루하루 불만만 쌓여갔다.

까만 모자와 교복, 새 가방 멘 친구들 보며 땅을 쪼아 무 판 돈으로 까만 모자 사고 ‘학교에 갈 수 있을까?’

이듬해 봄, 읍내 장에 무를 팔러 가게 되었다. 친구들이 까만 모자를 쓰고 오가던 길, 스스로가 한심한 생각이 들어 짐이 더 무겁게 느껴졌다.
겨우내 땅속에 묻힌 무는 금세 팔렸다. 빈 지게 지고 어슬렁거리다 모자 가게 앞에 발이 멈추었다. 눈에 밟히던 그 까만 모자가 눈에 띄었다. 망설이다 두 눈 딱 감고 무 판 돈에서 값을 치렀다.

가슴이 두근거렸다. 학교에 갈 수 있다는 설렘과 무 판 돈을 잘라서 쓴 두려움이 교차했다. 마침 읍내 중학교는 정원 미달이라는 소문을 들었다. 입학식이 끝났지만 시험도 없이 신입생을 받는다고 하니 솔깃해 있던 참이었다.

다행히 부모님은 무 판 돈에 대해서는 아무 말씀이 없으셨다. 다음 날 아침, 기회를 엿보다 감춰뒀던 모자를 쓰고 읍내로 내달렸다. 양말 신을 겨를도 없었다.
중학생은 모자만 쓰면 되는 줄 알았는데, 입학금, 등록금에 교과서까지 필요했다. ‘무슨 수가 생기겠지!’ 우선 부모님을 설득하는 게 발등의 불이었다.

집으로 돌아온 나는 불호령이 떨어지기를 기다렸다. 그런데 두 분 다 아무 말씀이 없으신 게 아닌가. 다음 날 불안한 등교가 시작됐다. 내 손엔 공책 몇 권뿐, 가방 대신 보자기에 싸서 들고 다녔다.

이상한 것은 학기 중반이 되도록 입학금 독촉이 없었다. 나중에 알았다. 알고보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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