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준원 교사마음지원센터 소장
채빈이는 책상과 의자를 집어던지며 교실을 쑥대밭으로 만들고 있었다. 나는 교실 뒤쪽에 앉아 씩씩거리다가 통곡을 하는 아이를 불렀다. “무슨 일이니?” 처음엔 화가 풀리지 않는지 흐느끼며 한숨만 쉬던 채빈이는 기다리고 있던 내게 하소연을 시작했다. 자신이 담임 선생님에게 얼마나 억울한 일을 당했는지 쏟아냈다. “넌 좋은 의도였는데 오히려 오해를 받았으니 얼마나 속상했겠니!” 나는 아이의 말을 끝까지 들어주었다. 그리고 화장실로 가서 세수도 하고 물도 마시고 오라고 권유했다.
한참 뒤에 돌아온 아이에게 나는 말했다. “오늘 집에 가서 담임 선생님께 하고 싶은 이야기를 편지로 써 오거라” 내가 책상과 의자를 정리하자 아이도 따라서 교실을 정리하고 집으로 돌아갔다. 지금 디자인 회사에 취업해 꿈을 잘 펼쳐나가고 있는 채빈이는 그때 일을 떠올리며 말했다. “그때 선생님께서 제 이야기를 들어주지 않으셨다면 저한테 무슨 일이 생겼을지 몰라요”
비슷한 경험을 여러 차례 겪어본 나는 사춘기 청소년의 분노를 풀 수 있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이 경청임을 확신한다. 사춘기 자녀가 소리를 지르고 분노를 폭발하는 것은 무언가 억울하거나 할 말이 있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물론 분노를 터뜨리는 아이의 이야기를 경청한다는 건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함께 흥분을 참지 못해 아이와 같이 분노를 터뜨리기 십상이다. 하지만 그렇게 되면 분노는 더 큰 분노를 낳아서 상황은 악화일로로 치닫고 만다. 아이의 마음이 진정되면 ‘분노클리닉’ ‘내면치유 프로그램’을 통해 내면아이를 치유하고 분노를 잘 다스리는 훈련을 반드시 받아야 한다.
채빈이와 정반대로 분노를 가슴에 담아두는 경우도 있는데 가슴에 차곡차곡 쌓인 분노는 복수심으로 변하기도 한다. 아이가 통 말을 안 해서 답답해 죽겠다는 부모가 있었다. 이럴 경우에는 부모의 ‘진심 어린 사과’가 가장 우선되어야 한다. 단 한 번의 사과만으로 관계가 회복되길 기대하긴 어렵다. 그래도 부모는 꾸준히 기다려주면서 자녀가 좋아하고 관심을 가지고 있는 대상을 통해 사랑을 전달해봐야 한다. 그러면 자녀도 점차 마음의 문을 열고 다가올 것이다.
철학자 에리히 프롬은 <사랑의 기술>에서 사랑은 단지 빠져드는 것이 아니라고 갈파한 바 있다. 그에 의하면 사랑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