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형준 前 한서학원 원장

나는 중학교 입학하기 전까지는 나만의 세계 속에 살았다. 나름 최고의 성적에 장래 희망도 뚜렷했다. 공부만이 전부라는 생각에 선악 판단의 기준도 공부를 잘하냐 못하냐였다.
그러다 중3 때 만난 친구들이 ‘더 가치 있는 것이 무엇인가’를 생각하게 했다. 그때까지 나를 진심으로 대해주던 사람은 부모밖에 없다고 생각했는데…
학교가 가깝지 않아 친구들과 같이 다니게 되었다. 그렇게 한 명 두 명 모이던 애들이 10명 남짓, 축구 멤버를 구성할 정도가 되었다. 아침에 집 근처에서 모여 학교에 같이 가고, 오후에는 학교 운동장에서 축구하며 늦게 끝나는 애들을 기다리다 집에 같이 오곤 했다.
그러던 어느 날 누군가 자전거 여행을 제안했다. 우리 모두 자전거 한 대씩 빌려 태릉 쪽으로 가면 완벽한 자전거 드라이브 여행이 된다는 것이다.
그때 우리들의 집은 정릉이었는데 동덕여자대학교를 끼고 석관동 쪽으로 해서 태릉까지 왕복 4시간이면 갔다 올 수 있다고 했다.
모두 “와” 하며 환호성을 질렀다. “그날 빠지는 놈은 죽는다” 하며 으름장을 놓는 친구도 있었다. 여행 날짜는 시간과 용돈이 확보되는 추석날로 했다. 어른들과 보내는 명절의 지루한 모임에서 벗어나 우리만의 세상으로 간다는 것이 얼마나 가슴 설레던지.
드디어 추석날 오전 10시경, “이제는 어쩌지도 못하는구나” 하시는 부모님의 체념을 뒤로 한 채 우리는 자전거를 타고 태릉으로 출발했다. 새로운 도전 때문인지 친구들 때문인지 마냥 행복했다.
10여 명이 일렬로 자전거를 타고 가니 꽤 우쭐하고 재미있었다. 지금 오토바이족들이 그런 기분일까? 언덕길도 많지 않았고 날씨는 너무 좋아 모든 것이 완벽했다. ‘더도 말고 덜도 말고 한가위만 같아라’라는 말이 딱 들어맞았다.
어른들과의 명절에서 벗어나 10여 명이 일렬로 자전거를 타고 가니 꽤 우쭐하고 재미있어
30분쯤 지나 바퀴는 바람이 빠져 찌그러지고 쉬다 끌다 터덜터덜 걷는데 웬 트럭이
선두의 친구가 장난스럽게 지휘도 하고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면서 서로 쳐다보며 웃기도 했다. 바람은 시원했고 엄마가 새로 사준 옷은 까칠한 감촉에 더할 나위 없이 폼 났다.
출발한 지 30분쯤 지났을까? 그중 한 명이 속도를 내기 시작했다. 이내 모두 경주하듯 달렸다. 나도 힘껏 페달을 밟았지만 자전거가 문제였는지 자꾸 뒤로 처졌다. 맨 후미에 있던 애는 빨리 오라며 달려가고 정신을 차려보니 길 위에는 어느덧 나 혼자만 남아있었다.
지금이라면 그냥 출발 지점으로 돌아왔을 텐데 왜 그랬는지 나는 계속 앞으로 나아갔다. 아마 친구들을 만날 것이라는 믿음 때문이었을 것이다.
그런데 뭔가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행인에게 물어보니 경기도란다. 당시 태릉 쪽은 시골 같은 곳이었다. 뻥 뚫린 넓은 길을 한참 달리다 보니 태릉을 지나 경기도까지 간 것이다.
시계는 어느덧 오후 2시를 넘기고 있었다. 설상가상으로 처음부터 이상하다 생각했던 자전거 바퀴는 바람이 빠졌는지 점점 찌그러지고 있었다. 더는 안 되겠다는 생각에 나는 자전거에서 내려 방향을 돌렸다. 이젠 내가 자전거를 끌고 가는 상황이었다.
물은 얻어서 조금 먹었지만 배가 고팠다. 어쩔 줄 몰라 길바닥에 앉아 있는데, 어떤 아저씨가 다가왔다. “학생, 오늘 추석인데 밥은 먹었냐?” 대답할 기력도 없고 사양할 처지도 아닌지라 염치 불고하고 쫓아갔다.
그 아저씨 집은 비록 누추했지만 아주머니가 따뜻한 밥 한 상을 차려주셨다. 염치없이 송편, 부침 등을 허겁지겁 맛있게 먹었다. 부끄러워 인사도 하는 둥 마는 둥 하고 공부 열심히 하라는 아저씨의 말을 뒤로 한 채 자전거를 끌고 다시 길을 나섰다.
자전거를 타고 온 그 길이 돌아갈 때는 왜 그렇게 먼지 너무 힘들었다. 쉬다 끌다를 반복하다 보니 어느덧 어둠이 조금씩 깔리기 시작했다. ‘언제 집에 가나? 친구들은 어디 있나? 시간당 계산되는 자전거 대여료는 얼마나 될까?’ 모든 것이 불안하고 답답했다.
그렇게 터덜터덜 걷는데 웬 트럭이 내 옆에 섰다. 트럭 운전사는 “학생! 뒤에서 보니 바퀴가 펑크 난 것 같은데 어디까지 가는지 모르지만 그 상태로는 못 간다” 했다.
그리고는 트럭에 내 자전거를 싣고 자전거 고치는 곳으로 데려갔다.
추석날인데도 문을 연 곳이 있었다. 하지만 자전거 수리점 아저씨는 펑크가 너무 크게 나서 고치려면 시간이 많이 필요하고, 심지어는 튜브 자체를 바꾸는 것이 낫다고 얘기했다.
앞이 캄캄한 노릇이었다. 난감해하는 나에게 트럭 아저씨는 바빠서 목적지까지는 못 데려다주지만 집 근처까지는 데려다 준다 하셨다. 어쩔 줄을 모르던 나는 결국 트럭 뒤에 앉아 자전거와 함께 아주 편하게 정릉 근처까지 왔다.
어느덧 해는 지고 나는 자전거를 질질 끌면서 자전거 대여점으로 갔는데 그때까지 나를 기다리던 친구들이 모두 환성을 지르며 달려오는 것이었다. 눈물이 픽 나는 순간이었다. 애정 어린 구타를 몇 대 당하고 집으로 왔다.
모두 배고프고 힘들었을 텐데 나를 기다려준 친구들을 보며 나는 더없이 행복했다.
인간은 무엇으로 사는가? ‘인간은 사랑 없이 살 수 없단 것을 모모는 잘 알고 있다’는 노래도 있듯이 사람은 사랑으로 사는 것인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