젓가락질부터!

이연호 자영업

얼마 전, 큰형님 칠순에 가족끼리 모였다. 식사 중 일부러 아이들 있는 곳을 가봤다. 저희끼리 모여 웃고 떠드는 모습이 보기만 해도 좋았다.
그런데 문득 앞에 앉은 녀석을 보니 젓가락질이 서투른 것이 아닌가! 일류대학을 나와 좋은 회사에 근무한다는 ‘큰누이’ 손자였다. ‘아니, 나이가 몇인데 여태 젓가락질도 못 해! 우리 손자 녀석은?’ 하고 돌아보니 녀석 또한 주먹 쥐듯이 젓가락을 움켜쥐고 어색하게 입에 음식을 집어넣는 것 아닌가!

일류대학 나와 좋은 회사 다니는 녀석 젓가락질 서툴러 ‘나이가 몇인데!’ 하다 우리 손자 돌아보니…

50여 년도 더 된 옛날, 할아버지의 사랑채 서당에는 초등학교에 입학하기 전 아이들에게 ‘제 이름 석 자는 써야 한다’며 배우러 오는 농사일하는 청년들로 북적였다.
할아버지께서 “김 서방, 자네 둘째가 이제 다섯이 넘었지? 금명간 우리 서당에 보내게나” 하면 며칠 뒤 아이 하나가 바깥마당에 쭈뼛쭈뼛 나타난다.

아이는 우선 댓돌에 앉아 발을 깨끗이 씻고 옷매무새를 가지런히 한다. 그리고 사랑방 윗간으로 들어서 훈장이신 할아버지께 큰절을 넙죽 올린다. “아무개의 몇째 아들 아무개입니다” 이때쯤이면 아이는 더 이상 마당에서 들판에서 뛰어놀던 천둥벌거숭이가 아니다. 제법 의젓하게 허리를 펴고 무릎을 꿇고 앉아 눈을 초롱초롱하게 뜬다.

대개 사랑방에는 동네 어르신들이 모여 있어서 개중에는 그 엄숙한 공기를 이기지 못하고 그만 울어버리거나 오줌을 싸 ‘울보’나 ‘오줌싸개’ 별명을 갖게 된 녀석도 있었다.
할아버지는 놋쇠 젓가락 한 벌과 붓 한 자루, 그리고 새로 필사해서 먹 냄새가 물씬 풍기는 천자문 한 권을 꺼내준다. 아이는 그것들을 깨끗한 광목에 싸 들고는 큰절을 올리고 집에 돌아가 그 놋쇠 젓가락으로 밤새 젓가락질을 연습한다.

그다음 날 전날과 똑같은 의전(?) 절차를 거치고는 할아버지가 곰방대로 담배를 다 피우는 동안 젓가락을 꺼내 접시에 담겨 있는 메주콩을 다른 그릇으로 옮긴다. 당시 놋쇠 젓가락은 귀하디귀한 물건이라 웬만한 집에서는 제사 때 말고는 잘 쓰지 않던 때여서, 밤새 연습을 했더라도 어르신들이 둘러앉은 가운데 콩을 옮기는 것은 쉽지 않다. 열에 여덟아홉은 벌벌 떨다가 불합격하기 마련이다. 그래도 “어험, 이제부터 열심히 해야 하느니라” 하시고는 천자문을 가르친다.

열흘쯤 지나 천자문의 첫 구절 ‘천지현황(天地玄黃)’을 외고 뜻을 풀이하고 습자지에 쓰는 첫 강을 뗀 아이는 훈장인 할아버지와 겸상을 해야 한다.
무릎 꿇고 앉아서 “깨작이지 마라. 한꺼번에 많이 푸지 마라. 쩝쩝 소리 내지 마라. 입안에 든 음식이 보이지 않게 하라. 흘리지 마라. 어른이 수저를 들기 전에는 먼저 들지 마라” 등등 식사 예절부터 배운다. 아울러 옛 성현들의 일화를 들려준다. 그리고 매일 오전 오후 강을 할 때마다 아침에 언제 일어났는지, 언제 씻었는지, 부모께 어떻게 했는지 묻고 혼내고 가르치신다.

이렇게 할아버지는 엄격하지만 글을 깨쳐주기만 한 것이 아니라 사람이 살아가는 도리를 자상하게 가르쳤던 것이다. 가끔씩은 제기차기 시합도 붙이고 농사일을 하는 큰 학생들에게는 감나무 밤나무 접붙이는 법, 볍씨 틔우는 법, 송아지 길들이는 법과 돼지 새끼 받아내는 법도 가르쳤다.

우리 동네뿐만 아니라 재 넘어 이웃 동네, 산 너머 먼 동네에서도 와서 공부할 정도로 할아버지는 인근 향리의 존경받는 교육자요, 어른이었다.
우리 집도 농사짓던 터라 농사일에 바빴지만 그보다는 동네의 어른으로서 역할을 더 중요시했다.

그 놋쇠 젓가락이 스테인리스 젓가락으로 바뀌기 시작할 무렵, 젊은 부모들은 아이를 더 이상 보내지 않았다. 할아버지의 서당에 다니던 떠꺼머리총각들도 다들 서울로 돈 벌러 떠났다.

요즘도 가끔 젓가락질을 제대로 할 줄 모르는 젊은 사람들을 만난다. 엄지와 검지, 중지를 잘 이용해 지렛대를 만들면 동글동글한 콩자반은 물론이요, 미끌미끌한 도토리묵도 우아하게 입에 넣을 수 있으련만, 나이가 서른을 훌쩍 넘어선 녀석들이 젓가락을 모아 쥐고는 쩔쩔매는 꼴이란!

젓가락을 쓰면 손의 근육도 발달하고 머리도 좋아진다고 하지 않는가!
우리나라 사람들이 미세한 정밀 기술이나 외과수술이나 공예 기술에 능한 것에도 한몫했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그 젓가락을 제대로 쓰는 과정에서 배우고 익혔을 예절 또한 얼마나 중요한가.
요즘엔 다 제 자식 귀한 줄만 알지 그 귀한 것을 더 잘 가르치고 다듬어야 더 귀해지는 줄은 모르고 그저 감싸고 하자는 대로 해야 좋은 줄 안다.
뭐라고 한마디라도 하면 “그냥 포크 쓰면 되잖아요” 한다. 더한 것은 그 아이들의 부모들이다. “애들 편하게 내버려둬요”
정말 좋은 것들은 자꾸 사라져가는 것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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