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행인 윤학

버스를 타러 초등학교 앞을 지나는데 무수히 많은 젊은 부부가 보였다. 아빠들은 무릎을 굽혀 아이 사진을 찍고 있었다. 무슨 일인가 살펴봤더니 교문 앞에 ‘입학식’이라고 쓰여 있었다. 놀라운 것은 아빠들이 거의 다 입학식에 참석한 광경이었다.
봄날의 햇살 아래 아이들의 의기양양한 표정과 젊은 부모들의 활기를 보자 학교 앞은 온통 새싹이 파릇파릇 솟아나고 꽃으로 물든 듯했다.
일본 초등학교 입학식 무릎 굽혀 아이 사진 찍는 아빠들 우리나라 아이들 행사는 으레 엄마 몫인데
아내도 감탄하며 부러워했다. “아빠들이 모두 다 왔네! 우리나라에서는 아이들 행사에 아빠들 얼굴 보기 힘든데… 아이 입학식은 으레 엄마들 몫 아니야? 일본은 이런 분위기구나~”
문득 내 젊은 날이 떠올랐다. 나는 아이들 입학식에 간 적이 있던가? 아이 셋 유치원 아버지 날에 한 번씩, 셋째 고등학교 졸업식에, 첫째 대학 졸업식에, 둘째 대학 졸업 사진 찍으러 간 기억이 전부다. 아내가 말을 이었다. “우리는 아이들 교육을 대부분 엄마에게 맡기잖아. 그러다 보니 엄마들도 모르는 사이에 당장 결과로 보여지는 아이들 성적이나 좋은 대학 보내는 데 서로 비교하게 되어 경쟁심이 커져가는 것 같아. 그러니 아이가 어른이 되어도 무엇이건 앞서려고만 하는 것 아닐까?”
어린 시절, 한약방을 하던 아버지는 내가 학교에서 돌아오면 늘 집에 계셨다. 약방에서 손님들과 바둑을 두거나 신문 기사로 토론도 했다. 나는 그분들 틈에 앉아 바둑 훈수를 두거나 정치며 세상 돌아가는 이야기에 끼어들기도 했다. 어른들은 자연스레 나를 친구처럼 대했고 살아온 이야기도 들려주셨다.
한약방에 손님이 없는 날은 아버지가 내 친구였다. 신문에 놀라운 뉴스나 재미있는 글이라도 실릴 때면 서로 먼저 보려고 실랑이도 했다. 그럴 때면 아버지는 내게 늘 져주며 양보했다.
일이 많을 때는 나도 아버지를 도와 한약재도 썰고 약첩도 싸며 아버지를 도왔다. 늦은 밤까지 내가 공부를 하면 아버지는 옆에서 약재를 썰었다.
산더미 같던 약재는 어느새 다 봉지에 차곡차곡 담기고, 다 못 볼 것 같던 책도 어느새 다 읽어 나는 시험 날이 기다려지곤 했다.
‘그 녀석 서울대 나왔는데 일은 못하더라고… 어찌나 답답한지!’ 그런 아이들이 정치인도 재판관도
아버지는 욕심을 부리지 않았다. 아기가 안 생겨 고생하던 새댁이 아버지 한약을 먹고 임신이 되면 다시 찾아오곤 했다. 이번에는 한약값을 좀 더 받아도 되지 않냐고 하면 아버지는 “그러면 쓴다냐?” 한마디 할 뿐이었다.
그렇게 나는 어른들의 세계를 어려서부터 가까이에서 접할 수 있었다. 어쩌면 그 덕에 아무런 경험도 없는 내가 변호사 사무실, 월간지며 아트센터를 큰 무리 없이 운영해 온 것은 아닐까.
그런데 공부의 세계에, 경쟁의 세계에 갇힌 아이들의 삶에는 한계가 있지 않을까. 마라톤을 일등으로 달리려다 보면 달려온 길에서 마주친 수많은 아름다운 풍경과 다정한 사람들은 물론 시원한 바람도 맛보지 못할 것이다. 일등상은 받을지 몰라도 목을 축일 새도 없이 달리기만 하면 어떤 삶이 기다리고 있겠는가.
기업 임원들로부터 종종 듣는 말이 있다. “그 녀석 서울대 나왔는데 일은 하나도 못하더라고… 어찌나 답답한지!”
우리 사회는 그렇게 길러진 아이들이 정치인도 되고 재판관도 되고 언론인도 된다. 공부에서 남보다 앞섰기에 인정받는 직업도 갖게 되었다고 믿는 사람들이라 늘 남보다 앞서야 한다는 생각에서 벗어나지 못할 것이다.
우리는 이렇게 ‘너 죽고 나 살자’는 싸움꾼 정치인들, 숲은 못 보고 나무만 보며 한쪽에 치우친 판결을 하는 재판관들, 알맹이는 못 보고 겉으로 떠도는 이야기만 써내는 언론인들을 길러낸다.
그들은 넓은 시야에서 세상을 보지 못하고 내가 앞서야 한다는 경쟁심으로 살아간다. 그들이 세상을 이끌어 가는 것 같지만, 그들이 만드는 세상은 우리 모두를 힘들게 하는 경쟁과 투쟁뿐이다.
그래서 오늘도 우리는 내가, 내 편이 앞서는 데만 마음을 쏟는다. 우리는 네 편을 잘 무찌르는 내 편 정치인에 열광한다. 우리가 사는 세상을 온통 내 편 네 편의 투쟁의 장으로 만들어 온 것은 결국 우리 자신들이었다. 사실 아버지들이 아이들과 시간을 함께하지 않았던 것도 우리가 사람에 대한 사랑보다 세상의 성취를 더 귀하게 여겼기 때문일 것이다.
나도 ‘입학식쯤이야, 생일쯤이야 의뢰인들의 중요한 소송 준비에 비하면 사소한 일 아닌가. 나는 수많은 사람들이 기다리는 책을 잘 만들어야 하지 않는가’ 하며 내가 아빠로서 줄 수 있는 것을 주지 못했다.
일본 입학식의 젊은 아빠들을 보니 너무 부러웠다. 평범한 직장인으로 보이는 그 젊은 아빠들이 그 중요한 일을 놓치지 않고 하고 있었다. 때를 놓치면 다시는 해낼 수 없는 일을…
나도 저 나이에 저런 아빠였다면? 나는 그 어떤 대가를 지불하고서라도 아이들 어릴 때로 돌아가고 싶었다. 아이들과 자주 놀아주는 아빠, 놀아주기를 넘어서 일과 삶을 함께하는 아빠가 되지 못한 후회가 밀려온다. 세상의 성취는 나이가 들어서도 할 수 있지만 사랑은 훗날 그 어떤 대가를 지불해도 다시 줄 수 없는 것이었다.
이번 대통령 선거도 ‘투쟁’으로 뭔가를 성취해 내겠다는 사람이 아니라 ‘사랑’으로 모두를 보듬으려는 사람을 선택해야 하지 않을까. 우리가 세상의 성취에만 몰입해 온 ‘투쟁적인 사람’을 선택한다면 우리는 더욱 험악한 투쟁과 경쟁에 빠져들 것이다.
나도 저 나이에 저런 아빠였다면? 훗날 세상의 성취는 가능해도 사랑은 그 어떤 대가를 지불해도…
아이들에게 제때 사랑을 주지 못하면 뒤늦게 후회해 본들 되돌릴 수 없듯, 이번 대통령 선거도 ‘사랑’에 투표하지 않으면 뒤늦게 후회해도 되돌릴 수 없을 것이다.
경쟁이 아닌 사랑으로 사람을 대하고 대통령도 뽑을 때 우리 주위에는 ‘성취’보다 ‘사랑’을 중시하는 사람들로 가득해질 것이다. 그보다 더 아름다운 세상이 있겠는가. 나도 이제부터 세상의 성취보다 가족, 직원, 주위 사람들에 대한 ‘사랑’을 더 소중히 여기며 살아가려고 한다. 그보다 더 아름다운 삶은 없을 것이기에… 지금도 늦지 않았다!
발행인 윤학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