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학찬 전 예술의 전당 사장

“딴따라과 나온 네가 어떻게 PD 시험을…”
내 인생은 왕따 인생이에요. 중학교는 제주도에서 다니고 고등학교를 서울 사는 누나 집에 얹혀살면서 다녔죠. 내가 제주도에서 왔다고 하니까 친구들이 상대도 안 해주는 거예요.
한양대학교 연극영화과에 들어가니까 친구들이 “딴따라 되려고 거기에 갔느냐?”며 또 안 끼워줘요. 당시만 해도 다 법대, 상대를 희망하잖아요.
그러다가 TBC PD 시험에 합격해서 방송국에 들어갔거든요. 방송국 PD가 되려면 영어, 국어, 논문, 상식을 봐야 했어요. 당시 일류대학을 졸업한 사람들만 들어가는 굉장히 어려운 시험이었죠. 내가 방송국에 들어가니까 방송국 사람들이 다 놀란 거지요. “어떻게 딴따라과를 나온 사람이 방송국에 들어왔느냐?” 하고요.
5명이 입사했는데, 첫 출근 날 점심때 4명은 각자 대학 선배들이 와서 “야, 밥 먹으러 가자” 그러는데 한양대는 아무도 없는 거예요. 선배가 없어 그 넓은 편성국에 나 혼자 남았어요. 혼자 나가서 방송국 근처에서 밥을 사 먹으면 “저 친구는 혼자 밥 먹는구먼” 이럴 거 아니겠어요? 그래서 매일 버스 타고 세 정거장쯤 가서 밥 먹고 오고 그랬지요.
연극영화과 가니까 ‘딴따라 되려고 거기에 갔느냐?’
PD 시험 합격해 방송국에 들어가자 사람들 다 놀라
미국에 갔더니 인종차별이 있어요. 또 왕따지요. 내가 처음에 옷 가게 종업원으로 취직했는데, 어느 날 예쁜 백인 여자가 가게에 들어왔어요. 내가 그 여자가 입을 만한 옷을 추천해 주었더니 “동양 남자가 내 취향을 어떻게 아느냐? 당신이 패션을 아느냐? 어떻게 나한테 옷을 권할 수 있느냐?” 이러는 거예요. 그래서 “I’m sorry”하고 말았어요.
하루는 사람이 꽉 찬 버스를 탔어요. 어렵게 자리가 나서 앉았는데, 백인 할머니가 올라와 자리를 양보했어요.
그런데 할머니가 앉자마자 “내가 왜 너한테 자리를 양보받아야 되느냐? 이 버스가 항상 텅텅 비었는데 동양 사람들이 온 다음부터 자리가 없다” 이러는 거예요.
게다가 “이민자들이 온 다음부터 동네도 지저분해지고 버스도 혼잡해지고…” 끊임없이 얘기하더라고요. 그렇다고 할머니랑 싸울 수는 없어 그다음 정거장에서 조용히 내렸지요.
그렇지만 나는 그런 걸로 마음 상하거나 침체되지 않았어요. 그 사람들을 이해했고 나중에는 다 친구가 되었지요.
누구를 미워하면 내가 괴로워요. 그런데 누구를 용서해버리면 내가 행복해져요. 아무리 힘들어도 마음을 편안히 갖고 궁리를 하면 살길이 나오더라고요. 어떻게 보면 무지하게 절망적인 일도 어떻게 보면 무지하게 희망적이지요.
청계천 퍼레이드를 합시다!
요즘도 하루에 하나씩 아이템을 쏟아내고 기획하고 있어요. 예전에 서울문화재단에 가서 직접 프레젠테이션하며 ‘청계천 퍼레이드’를 제안했어요. 우리나라는 제대로 된 퍼레이드가 없고, 축제한다고 하면 가수들 데려다가 노래시키고 사람들은 그냥 구경만 하잖아요.
“청계천이 복원됐다고 하는데 청계천에 살던 사람들의 옛날 문화나 생활은 복원이 안 됐다. 옛날에는 골목에서 들리는 소리들이 있었는데 그런 게 다 없어졌다. 똥 푸는 사람은 ‘퍼~’, 굴뚝 청소하는 사람은 ‘뚫어~’ 그런 소리들…
새벽에 제일 먼저 나가는 사람이 누구였는지 아느냐? 두부 장사다. 지금은 근사한 팩에 담긴 두부를 사 먹지만 옛날에는 새벽에 종을 치면서 ‘두부 사려~’ 하고 외치는 소리가 골목에서 들리면 나가서 두부를 사고 그랬다.
지금 여자들은 비싼 화장품을 쓰지만 옛날 우리 어머니 세대는 ‘동동구리무’를 사서 발랐다. 북을 등에 지고 걸어가면 방망이가 북을 때리게 만들어놓아서 ‘둥둥 둥둥’ 소리가 나는데 그 소리를 듣고 누나나 어머니들이 나가서 동동구리무를 샀다.
늦은 밤 맨 마지막에 누가 지나갔느냐? 찹쌀떡, 메밀묵 장사가 지나가고, 그다음에 딱따기를 ‘딱딱’ 치면서 야경꾼이 지나갔다.
퍼레이드를 통해서라도 복원해 놓지 않으면 그런 풍습은 아마 영영 없어질 거다. 이런 것을 재현해 보면 재미있지 않겠는가. 엿장수 50명 불러다가 엿 치면서…
나이 든 사람들은 옛날이 그리워서 좋아할 것이고, 젊은 세대들은 옛날에는 저랬구나 하면서 신기해할 것이다” 그렇게 프레젠테이션했더니 모두들 좋아하면서 “감동적이다. 오케이” 그래서 통과됐어요.
지금 내 친구들은 거의 다 은퇴했어요. 얼마 전 TBC 모임에 갔는데 퇴직하고 거의 다 놀아요. 나처럼 아침부터 밤늦도록 중뿔나게 돌아다니면서 뭔가 일을 저지르고, 사람을 만나고 궁리하고 해결하는 삶을 사는 사람은 없는 것 같아요. 어떤 친구는 나를 부러워하기도 하고, 어떤 친구는 “제발 이제 고달픈 인생은 그만 정리해라” 합니다.
내가 학기 초에 학생들한테 꼭 해주는 코란에 나오는 말이 있어요. ‘내게 만약 두 조각의 빵이 있다면 그중 하나를 팔아서 히아신스 한 송이를 사겠다’ 그러니까 빵은 내 육체를 살찌우고, 히아신스 한 송이는 내 영혼을 살찌운다는 거지요.
그만큼 정신세계가 중요하니까 빵이 있다고 다 먹지 말자 이거예요. 마음을 항상 편안하게 먹고 남을 배려하고 그렇게 하면 인생이 행복해진다는 거지요.
나는 그렇게 살아왔고 앞으로도 계속 그렇게 살고 싶어요.
고학찬 전 예술의 전당 사장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