맨발로 두만강 얼음 위를
김기수 신부
3년 전 겨울, 두만강 강가 다 쓰러져가는 초가집 지붕 밑을 뚫어 만든 다락방에 고개도 들지 못하고 숨어있었던 북녘 동포들을 만난 일이 있습니다.
개신교 집사의 안내로 그들이 숨어있는 곳에 가게 되었는데, 제가 “사진을 찍어도 되겠느냐”고 묻자 모두 다 무서워 벌벌 떨며 꺼렸습니다.
그래서 제가 “이다음에 통일이 되어 다시 만날 수 있을 때 찾으려고 그런다”고 말하자, ‘통일’이라는 말 때문인지 연화의 눈이 빛나면서 말할 수 없는 기쁨이 얼굴에 스쳐 가는 것을 보았지요. 그녀가 선선히 허락해서 다른 동포들도 사진 찍는 데 적극 협조 해주었습니다.
그녀는 두 아들이 있는데, 남편은 정신이 온전치 못하여 가족들을 괴롭힌다고 했습니다. 그때 너무 가련해서 다른 사람들 몰래 제 전화번호를 알려주었는데, 이번에 전화를 해왔습니다.
두만강을 건너오기 하루 전, 전화로 남편의 상태가 너무 나쁘다며 정신병 약인 ‘루단핑’을 구해달라고 사정하였습니다.
전화를 받고 그날 오후에 바로 약국에 가서 ‘루단핑’을 찾았으나, 그런 약은 정신병원에서만 판다고 하였습니다. 한 시간을 운전하여 병원문 닫을 시간에야 간신히 정신병원에 도착했지만 의사의 처방전을 받아와야 약을 주겠다고 해요.
정신과 의사에게 주위를 살피며 ‘북한의 친척 환자’에게 줄 약이라고 솔직히 말했습니다. 의사는 뜻밖에도 “북한에는 그런 환자가 많다”고 하면서 선선히약을 처방 해주었습니다.
약을 사고 여자 신발 다섯 켤레와 겨울 잠바, 옷가지를 산 뒤 집에 돌아와 새벽에 떠날 준비를 해놓고 잤습니다.
그러나 새벽부터 대기했지만 전화가 오지 않아서 ‘국경을 건너다 잡혔구나’ 하는 걱정이 들었습니다.
포기하려던 그때, 연화에게서 전화가 왔습니다. 지금 막 두만강을 건넜다며 회령 건너 마을에 숨어있다는 것이었습니다. 4시 반에 다시 넘어가기로 국경수비대와 약속해서 그 시간까지 꼭 가야 한다며 애걸하는 목소리가 들렸습니다.
두만강을 따라서 낭떠러지 길과 곳곳에 얼음이 남아있는 울퉁불퉁한 흙길을 시속 100km로 달렸습니다.
국경을 넘어갈 때 경비병에게 들키면 그걸 무마하기 위해서 꼭 필요한 술 두 병과 담배 두 통을 사자, 벌써 어둑어둑 해가 지고 있었습니다.
급히 강길을 달려가는데 자꾸 전화는 옵니다. 급한 마음에 “내가 날아갈 수도 없지 않느냐” 소리를 버럭 질렀습니다. 그러나 오죽 조급하면 그럴까 한편 미안한 마음이 들었습니다.
가까스로 4시에 ‘대소’라는 중국 마을에 도착했습니다. 전화할 때는 아주머니 세 분과 남자 한 명이 온다고 했는데, 연화와 젊은 청년 한 명만 어느 농가의 헛간에 숨어있었습니다.
다른 두 아주머니는 며칠 동안 포근한 날씨로 여기저기 얼음이 꺼져들어 무섭다며 되돌아가고, 연화와 청년만 죽을 각오로 강을 건너왔다고 합니다. 농가 헛간에서 말소리를 죽여가며 연화에게 약을 설명해주고, 옷과 신발, 영양제 등을 주었습니다. 헛간 밖에서는 중국인 농가주인이 자꾸 서성거리며 우리들의 동정을 살피는 것 같아 불안합니다.
연화는 안절부절못하며 제가 하는 이야기도 건성으로 듣습니다. 약속시간이 30분밖에 남지 않았다며 함께 온 젊은 청년은 빨리 가자고 자꾸 재촉합니다.
연화는 양말도 신지 않은 맨발에, 내복과 바지는 강을 건너오면서 다 젖어 있었습니다. 브래지어도 차지 않았습니다.
새 속옷과 브래지어를 주니, 돌아서서 웃옷을 벗고 브래지어를 차고 저에게 뒷후크를 끼워달라고 합니다. 급하니 할 수 없습니다.
제가 건네준 돈을 비닐봉지에 꽁꽁 묶어서 브래지어 속에 감춥니다. 속옷과 바지는 갈아입지 않고 신발도 배낭에 넣습니다. 강을 건너가려면 또 젖을 터인데, 아까워서라고 합니다. 신발 젖는 것이 아까워 얼음이 버석 버석하는 강을 맨발로 건너가겠다는 것입니다.
무거워서 어떻게 배낭 두 개와 술 두 병을 가지고 가려 하는가 걱정했지만 연화는 자꾸 물건 한 가지라도 더 배낭에 넣으려고 애씁니다.
북한경비병과 약속한 장소까지 자동차로 태워다주었습니다.
두만강의 얼음이 반쯤은 녹아서 빠른 물살이 흐르고 있습니다.
그들을 내려놓고 가는 척하다가 나무 밑에 자동차를 숨겨놓고 가방에서 카메라를 꺼내들고 그들이 건너가는 모습을 지켜보았습니다.
청년은 재빠르게 아랫도리를 벗고 배낭과 바지를 둘러메고, 연화는 팬티만 입고 배낭을 메고 강을 건너고 있었습니다.
건너편에서는 북한경비병이 총을 메고 기다리고 있습니다.
중간쯤 가니 물이 허리쯤 올라오고 물살도 너무 거세어 더 이상 앞으로 갈 수 없게 되자 연화는 청년에게 도와달라고 소리를 지릅니다.
얼음 녹은 강물을 건너 맨발로 얼음 위를 걸어가는 그들이 얼마나 춥고 발이 저려올지 상상해보십시오.
얼음으로 베어진 그들의 발에서 흐르는 피가 하얀 얼음 위에 빨간 발자국으로 남아있습니다. 그들의 모습을 카메라에 담기가 민망스러웠습니다.
연화가 더 이상 걷지 못하고 얼음 위에 주저앉는 모습이 보입니다. 총을 멘 경비병이 다가와 부축하여 강 건너까지 데리고 가자 연화가 젖은 옷을 벗고 마른 옷으로 갈아입었습니다.
그런 상황에서는 부끄러움도 남아있지 않겠지요. 중국 공안이 지나갈까 봐 마음이 조마조마하면서도 저는 냉큼 그 자리를 떠나지 못합니다. 왜 그런지 동포들의 모습을 한 가지라도 더 보고 싶었습니다. 저는 중국 쪽에 있으니, 이럴 때 중국 공안이 지나가면 나는 즉시 감옥행이지요.
청년도 건너가서 제가 준 동내복 하의는 자기가 입고 상의는 경비병에게 건네줍니다.
경비병도 재빨리 총을 내려놓고 윗옷을 벗더니 속에 동내복을 입습니다. 그럴 줄 알았으면 한 벌 더 보내는 건데…
저는 그들이 시야에서 사라진 후에도 한없이 그 자리에 서 있었습니다.
김기수 신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