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꾸는 나오시마
김경한 컨슈머타임스 대표
아동 학습서를 만들던 ‘후쿠다케 서점’의 창업주, 후쿠다케 테츠히코. 그는 자신이 늘 그리워하던 나오시마에 아이들이 자연을 즐기는 캠프장을 만들고 싶어 했다. 그러나 그는 그러지 못하고 눈을 감았다. 아들 후쿠다케 쇼이치로는 후쿠다케 서점을 ‘잘 살다’라는 의미의 ‘베네세’로 바꾸고 다시 아버지의 꿈을 펼치기 시작했다.
나오시마에 도착한 후쿠다케는 아버지가 왜 그토록 이 섬을 못 잊었는지 알게 됐다. 아름다운 세토 바다는 섬을 타고 흘러내리는 부드러운 곡선에 안겨있었고 한없이 고요한 석양 바다는 단번에 마음을 사로잡았다. 세토 바다의 아름다움은 에도시대부터 찬사를 받아왔다. 1156년 내전에서 패배한 스토쿠 상왕이 유배길에 섬에 들렀다가 주민들의 솔직함에 감동해 마을 이름을 나오시마(直島)라고 지었다.
섬을 둘러본 뒤 세계적인 건축가 안도 다다오에게 도움을 요청했다. 두 사람은 밤늦도록 술잔을 기울였다. 세상에서 하나뿐인 갤러리를 만들어보자는 후쿠다케의 제안에 안도는 무척 당황했다. 상상이 가지 않는 그림이었다. 그러나 방문할수록 산과 바다의 굴곡에서 뭔가 신비함이 솟아나고 있음을 감지했다. 나오시마 프로젝트는 그렇게 시작됐다. 후쿠다케의 열정과 땀은 서서히 사람들을 움직였다. 1992년 베네세하우스가 선을 보였다. 2002년에는 지추미술관, 2010년에는 이우환미술관이 문을 열었다. 옛 골목을 살리는 ‘이에(家) 프로젝트’는 인간의 역사와 깊이를 담아냈다.
나오시마를 움직이는 기업 베네세는 ‘잘사는 것’에 대한 끝없는 탐구를 하고 있다. 인간은 본능적으로 행복해지려 한다. 하지만 도시에서 인간은 오락거리가 넘치는데도 고독하고 행복하지 못하다. 섬의 풍경은 평화를 준다. 이렇게 좋은 곳에 살면 절로 행복해지겠다는 생각이 든다. 지친 그들을 제 발로 오게 만드는 게 숙제였다. 후쿠다케와 안도의 깜짝 놀랄 만한 구상이 그것을 가능하게 했다. 답은 건축과 예술이었다. 안도의 손길을 거친 호텔이 차례로 개장하면서 전 세계 사람들이 몰려들었다. 마음에 고인 물을 길어 올린다는 독특한 조각 ‘가보짜(호박)’는 백미였다. 어느 해 태풍에 호박 꼭지가 날아갔는데 어부가 파도에 떠다니는 꼭지를 건져 다시 끼웠다. 예술과 인간은 이렇게 공존하고 있다. 오래된 과거가 거장들의 건축과 어우러져 이야기를 쏟아냈다.
바다, 태양, 예술과 건축을 한데 묶어 문화공간을 만들고 그 생명력으로 버려진 섬을 살려냈다. 명소를 만들어낸 결정적 힘은 후쿠다케의 ‘공익자본주의’ 소신이었다. 현대기업들은 대개 문화 사업을 목적으로 재단을 만든다. 하지만 제대로 된 운영보다는 오너의 자녀들이 관계하고 치부와 도피의 통로로 이용되곤 한다. 왜곡된 ‘금융자본주의’의 모습이다. 후쿠다케는 악화가 양화를 구축하듯 병든 자본주의를 과감히 바꾸고자 했다. 자본주의와 예술에 대한 후쿠다케의 지론은 설득력과 울림이 있다.
“공익자본주의는 부의 배분을 달리한다. 세금회피나 과다한 배당의 일부를 기업 스스로가 좋은 문화를 만드는 데 쓰는 것이다.
문화는 경제에 종속되는 것이 아니라 문화가 경제를 이끌어가야 한다. 사물은 경제에 앞서가지 않는다. 사람의 생각이 앞서가는 것이다”
재산싸움에 이골이 난 현대자본주의의 추악함은 한계에 와 있다. 오직 자신과 가족만이 잘살고 말겠다는 천민자본주의는 진한 고해의 시간이 필요하다.
나오시마는 꿈꾸는 인간의 수채화가 그려진 섬이다. 후쿠다케의 과대망상이 현실이 된 미지의 세계, 버려진 광산에 대한 분노가 예술로 승화된 천국, 천 년의 신전을 만든다는 정성을 쏟아부은 이상향이다. 나오시마에는 긴장과 경쟁 대신 사람 냄새가 있었다. 그림과 미술관이 주인공 같지만 실은 인간이 주인공임을 알게 해주었다. 그저 보고 느끼는 것만으로도 아름다운 인간을 그려낼 수 있었다.
김경한 컨슈머타임스 대표
前 MBC 기자, YTN 경제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