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가 건네준 마술상자

김희중 사진작가

방 한 칸에 온 가족이 모여 살던 시절, 1954 서울

선생님 사진 속에는 선생님께서 다정하게 들려주는 이야기가 숨어있는 것 같더군요
중학교 2학년 여름방학 때 아버지가 “희중아, 이리 와보거라” 해서 갔더니 카메라를 앞에 턱 놓고는 “이게 뭔지 아느냐?” 그래서 “사진을 만드는 기계입니다” 했지요. “맞다. 하지만 사진만 만드는 게 아니라 바로 마술상자야. 이 상자가 무슨 마술을 부리는지 방학 동안에 알아내거라” 하시는 거예요.
방학이 되면 우리 8남매에게 학교 숙제와는 따로 숙제를 내주곤 하셨거든요. 그해 여름방학 ‘아버지 숙제’는 카메라 공부였던 거지요. 아버지가 애지중지하던 것이라 고장 날까 봐 처음에는 겁도 났어요. 가족부터 찍고 친구도 찍고 여기저기 돌아다니며 찍었지요.

여름방학 때 아버지가 카메라를 앞에 놓고는 ‘이 마술상자가 무슨 마술을 부리는지 알아내거라’

어느 날, 동네 골목을 어슬렁거리다가 눈에 ‘팍’ 꽂히는 것이 있었어요. 새댁이 아기에게 젖을 먹이고 있었는데 내 눈에 너무나도 평화롭고 아름답게 클로즈업되는 거예요. 카메라를 들었지만 셔터를 누르지는 못했어요. 사춘기 소년이 하얀 젖가슴에 렌즈를 들이댈 용기가 차마 없었던 거지요.웃음 그날부터 세상을 보는 눈이 달라졌어요. 내가 사는 세상과 사람들, 동물들이 너무도 아름답게 보이는 거예요. 무서운 것, 추한 것, 더러운 것에서도 다른 무엇이 보여요. 서러워 우는 사람의 모습에서도 아름다움이 보였고 사물이 움직이는 모습도 경이롭게 보였어요. 있는지도 몰랐던 골목길 나무도 보이고… 자전거포 아저씨를 보니까 귀가 한쪽이 굉장히 크더라고요.

방학이 끝날 즈음 아버지에게 보고했지요. “카메라를 들고 다니니까 예전에 보지 못했던 것들이 보였습니다” 그 새댁을 비롯해 파인더를 통해 발견한 새로운 모습들을 얘기했지요. “그래서 마술상자야” 하고 껄껄 웃으시더군요.
아버지는 평생 가족들 사진만 찍었어요. “웃어라” “옆으로 서라” 하면서 자식들 하나하나를 관찰하고 성장하는 모습을 지켜보신 거지요. 그 속에 당신의 사랑을 키우신 거예요. 아버지는 렌즈를 통해 보면 피사체에 대한 관심과 사랑이 생긴다는 걸 나한테 가르치신 거지요.
나는 학생들에게 가족사진을 찍으라고 해요. 카메라를 들고 부모님을 찍어보면, 입고 있는 옷이 낡은 것인지, 얼굴에 근심은 없는지, 건강하신지, 그리고 날 키우느라고 얼마나 고생하셨는지 보이기 때문이지요.

사진가는 먼저 휴머니스트가 되어야 해요. 인간을 향한 애정이 없다면 아무리 화려하게 보이는 사진도 생명이 없지요.

언제부터 본격적으로 사진을 시작했나요?
중학교 3학년이던 1954년 여름, 대청마루에 앉아 신문을 보는데 독자 사진 수상작들이 실려있었어요. 당시 중앙일보는 독자 사진을 공모해 우수작들을 정기적으로 실었거든요.
아버지가 “이 사진들 어떠냐?” 물으시길래 보니까 밋밋해요. 평범한 인물 사진과 풍경 사진이더라고요. “이런 사진은 눈감고도 찍을 수 있습니다” 했더니 날 빤히 보시면서 “그럼 한번 찍어서 내봐라” 하셨어요.

일요일 아침 을지로 집에서 신촌까지 걸어갔어요. 1년 전 여름방학 때 썼던 마술상자를 메고. 당시 신촌은 경의선이 논밭 사이로 지나가는 시골이었어요. 밭에서 일하는 모습이 너무 아름다운 거예요.
한 아낙네에게 가서 사진을 찍고 싶다고 부탁했더니 “내 사진은 뭘 하려고…” 쑥스러워하면서도 거절하지는 않더군요. 일어선 그녀의 상반신을 찍었어요.

대나무 갈퀴를 메고 환하게 웃는 모습이었어요. 아버지가 보시고는 구도도 좋고 노출과 초점도 정확하다면서 “신문에 낼 만하다” 하고 칭찬해 주셨어요.
며칠 뒤에 상을 받으러 오라고 해서 가작이나 입선 정도겠지 하고 교복을 깨끗이 다려 입고 갔지요. 기성작가들이 많이 응시했었거든요. 수상자들이 맨 앞에 앉아 있는데 어린 학생은 나밖에 없어요. 몇몇 사람의 격려사가 끝나고 “대상부터 발표하겠습니다” 하더니 “대상작 ‘여장부女丈夫’, 김희중!”하고 불러요. 자리에서 일어났더니 사회자가 힐끗 보고는 두 번을 더 불러요. 까까머리 중학생이리라고는 생각하지 못한 거지요. 단상으로 갔더니 이름표를 보고는 상을 주더군요.

밭에서 일하는 모습이 아름다운 한 아낙네 사진 찍고 신문에 냈는데 며칠 뒤 ‘대상 김희중!’

아버지가 그렇게 기뻐하는 모습을 본 적이 없었어요. 얼마 뒤에 중앙일보 사진부장 이명동 씨에게 데리고 가서 “이 아이가 사진에 관심이 있어요. 이번 사진 콘테스트에서 대상도 받았습니다. 사진 좀 가르쳐주세요” 하고 부탁하시는 거였어요.
그날 이후 틈만 나면 이명동 선생을 쫓아다니며 사진을 배웠지요. 아버지는 사진보다도 세상 구경을 다니면서 남자답게 단련되기를 바라신 것 같아요. 여자들만 있는 집에서 자라면 문제가 있다고 보신 것이지요.
그때 사진 콘테스트에서 대상을 받은 것이 내 인생에서 가장 획기적인 사건이었지요. 스스로 사진 실력에 어느 정도 자신감을 가지게 되었고, 그 일이 없었다면 나의 사진인생을 이끌어준 이명동 선생도 만나지 못했을 것이니까요.

김희중 사진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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