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명의 끈 못 놓고

정하득 대전 호스피스회 고문

암센터에서 호스피스 봉사를 하다가 폐암 말기의 한 어르신을 만났다.
깔끔하고 내성적이며 의기소침한 그에게 접근하기란 그리 쉬운 일은 아니었다. 차가운 얼굴과 이따금 번뜩이는 그의 눈빛에 서린 분노가 나를 더욱 힘들게 만들었다.

어느 날 그가 평상시보다 기분이 좋은 것 같아 틈을 보아 하고 싶었던 이야기를 조심스럽게 꺼냈다. “어르신이나 저나 이젠 석양길을 가고 있는데 삶과 죽음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는지요?”

창밖에는 철 지난 벚꽃이 봄바람에 이따금씩 하얗게 흩날리는 광경을 하염없이 바라보며 침묵으로 일관하던 그가 “왜 그걸 생각해 보지 않았겠나? 내 꼴이 이 모양인데 아무 생각도 없다면 사람이 아니지!” 억양을 높였다. 평소보다 약간 상기된 표정이었다.

주치의로부터 폐암 말기라는 선고를 직접 듣고 매 순간 저벅저벅 다가오는 죽음의 소리가 들릴 텐데 무슨 생각인들 안 해보았겠는가. 아픈 상처를 바늘로 찌르고 말았다는 생각에 내 눈길은 창밖을 향하고 말았다.

잠시 후 그는 입을 열었다. “인류 역사가 생긴 이래 지금까지도 해결 못 한 문제가 바로 죽음이야. 그걸 해결했다는 놈들이 있다면 모두 자기기만이지!” 한학을 공부할 만큼 했다는 그가 내린 결론은 요지부동이었다.

어느 날 오전 그가 위독하다는 전갈을 받았다. 급히 달려갔다. 차가운 표정에 깐깐한 말솜씨로 그가 내게 던졌던 부정적인 말들이 뇌리에서 맴돌았다.
병실을 들어서니 가족들이 그의 침상을 둘러싸고 있었다. 핼쑥하다 못해 뼈만 남은 그의 얼굴은 짙은 황달에도 검은빛이 감돈다. 잠깐의 뒤척임에도 안간힘을 다 쓰는 듯 힘든 모습이다. 얼굴에는 진땀이 비 오듯 한다. 호흡이 깊고 가파르며 가래가 끓는다.

폐암 말기 눈빛에 분노 서린 어르신 ‘인생은 삶이 전부야. 삶이 끝나면 그만인 거야’ 결론은 요지부동

오후 서너 시가 되도록 헐떡거리기만 한 그는 이따금씩 눈을 뜨고 주위를 살피기도 한다. 가족 모두 안타까운 모습으로 그의 호흡 하나하나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혼미한 상태에서 마지막 생명의 끈을 놓지 않으려는 그의 몸부림이 처절하기 그지없다. 가족들도 모두 지치고 말았다. 육신의 허물을 벗어 던지는 것이 그토록 힘든 것인가! 차마 눈을 뜨고 볼 수 없는 일이다.

큰아들이 견디다 못해 눈물을 글썽거리며 입을 열었다. “아버지, 이제 그만 가셔요. 그곳에서 편히 쉬세요” 아들은 죽음의 저편을 그곳이라고 표현할 뿐 하늘나라, 저승, 낙원, 천당이라고 하지 않았다. 아버지와는 달리 아들이 말하는 그곳은 어떤 곳일까.

언젠가 그 어르신이 내게 한 말이 생각났다. “인생은 삶이 전부야. 삶이 끝나면 그만인 거야! 망자도, 생자도 이 땅에서 함께 사는 거야! 가기는 어딜 가. 망자의 혼은 생자를 돕고 생자는 망자를 기리고 제를 올리면서 함께 사는 거야!”

그는 자녀들의 신앙이나 나의 믿음을 인정하거나 받아들이는 법이 조금도 없었다. 그런 그가 아들의 목소리를 듣고 한참 만에 입술을 조금씩 움직이기 시작한다. 그는 안간힘을 다해 아들을 향해 말을 한다. “나… 외로워서 못 가, 무서워, 같이 가!”

뜻밖이었다. 삶이 전부이고 삶 이후에는 갈 곳이 없다던 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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