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예술 이야기
이은주 사진작가
어릴 적 꿈이 기자나 외교관이었는데
전 세계 유명 예술가들과 명사들을 만날 수 있었으니 꿈을 이룬 셈수 있어 다채로운 얼굴이 오묘해서…

나는 문학을 전공했지만 사진을 더 좋아해 친구들에게 사진 찍히고 모델로 서는 것도 즐겼다.
학교 다니던 1960년대, 나는 연극 공연, 음악회를 기를 쓰고 쫓아다녔다. 명동의 ‘돌체’라는 음악감상실에도 다녔다. 그러다 교향악단의 감동적인 연주 장면을 사진으로 담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그 무렵 명동 유네스코 회관에는 여러 써클이 있었는데 나는 사진반에 들어갔다. 처음으로 아사히 펜탁스 카메라를 샀는데 그때 25만 원을 줬으니 꽤 큰 돈이었다. 필름은 물론 암실 기자재와 약품 등 소모품도 사야 해서 돈이 적잖게 들어갔다.
한 롤짜리 일반 필름은 비싸서 100피트짜리 긴 필름을 잘라서 쓰곤 했다. 암실에서 쓰고 버린 필름 껍질에 필름을 감아 두었다가 다시 쓰곤 했는데 마지막 커트는 꼭 빛을 먹어서 정작 중요한 사진이 못쓰게 되는 경우도 있었다.
그래도 사진을 많이 찍고 싶고, 필름은 비싸니 어쩔 수 없는 노릇이었다. 그때는 사진작가가 되겠다는 생각도 없었다. 지금도 그 시절 흑백사진들을 들여다보는데 학생 시절에 했던 작품들에 더 애착이 간다.
청춘 시절 내 우상은 재클린이었다. 재클린은 원래 <워싱턴 타임즈-헤럴드>의 프리랜서 사진기자였는데 퍼스트레이디가 됐다.
연극, 음악회 기를 쓰고 쫓아다녀 교향악단 연주 장면을 사진으로 담고 싶다는 생각에 카메라를 샀는데
1990년 초에 로드아일랜드 뉴포트에 있는 재클린의 여름 별장을 방문할 기회가 있었다. 케네디와 재클린이 사랑을 서약한 이 농장은 케네디 대통령이 재임 시절 여름휴가를 보낸 곳이어서 하계 백악관으로 불리기도 했다.
재클린이 어떻게 픽업되었는지 알고 봤더니, 재클린이 찍은 사진 한 장 때문이었다. <워싱턴 타임즈-헤럴드>에 유일하게 실린 재클린의 사진은 바로 케네디를 찍은 사진이었다고 한다.
대학 시절 내 마음속 또 하나의 우상은 화가 천경자였다. 국전이 열리는 덕수궁 국립현대미술관에 가면 항상 천경자의 작품을 봤다. 나는 ‘내가 꼭 사진의 천경자가 되겠다’ 고 염원했다.
나는 천경자의 수필도 좋아했다. 천경자의 수필에 미도파라는 딸 이름이 나오는데 그 딸과 멕시코를 여행한 이야기가 너무 재미있어서 항상 기억에 남았다.
세월이 지난 뒤에 워싱턴에 사는 천경자의 딸을 만나러 갔다. 그녀는 그때 ‘보이스 오브 아메리카VOA’에 근무했는데 “천경자 선생님 수필에 미도파라는 딸이 누군지 참 궁금하다”고 했더니 자기가 그 미도파라고 했다.

엄마하고 너무 똑같이 닮아서 놀랐다. 엄마가 미국에 오면 항상 그녀가 운전해서 엄마를 모시고 다닌다고 했다.
“내가 천경자 선생님을 무척 좋아한다. 선생님의 영향을 받아서 예술사진을 한다”고 말했더니 그녀가 기뻐하던 모습이 눈에 선하다.
그 무렵, 나는 세계 각국을 다니며 유명 인사들을 만나고 사진을 찍고 취재를 했다. 주로 잡지사에서 후원한 기획 취재였다. 내가 좋아했던 재클린, 영화배우 오드리 헵번의 발자취를 찾아다니고 그것을 <월간 세계 여성>에서 기획 기사로 작성했다.
사진을 하면서 예술가, 명사, CEO를 만난다는 것은 아주 즐거운 일이다.
신문에서는 좋지 않은 평을 받지만 실제 만나보면 너무 따뜻하고 좋은 사람도 있었고, 참 훌륭한 사람이라고 알려져 있지만 기대에 못 미치는 사람도 있었다.
주빈 메타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