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쯤 채워진 포도주 보고

윤기향 경제학과 교수

한 척은 동쪽으로,
또 한 척은 서쪽으로 항해합니다.
그런데 부는 바람은 똑같습니다.
우리에게 나아갈 방향을
알려주는 것은
큰바람이 아니라
돛의 방향입니다.

우리가 삶의 과정을 여행하는 동안
운명의 방향은
바닷바람과 같습니다.
삶의 목표를 결정하는 것은
영혼의 방향이지
평온함이나 다툼이 아닙니다.

엘라 휠러 윌콕스 운명의 바람

어떤 경제이론이 옳은가 다투는 것은 중요하지 않다.
한 나라의 국민들이 어떤 가치관을 갖느냐에 따라 한 나라의 경제가 어디로 가야할지 결정된다. 편집부

포도주가 반쯤 채워져 있다는 객관적인 사실은 변함이 없지만, 포도주가 반밖에 남아 있지 않다고 보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반이나 남아 있다고 보는 사람이 있다. 이런 시각차는 개개인의 기질, 출생, 환경, 성장 과정, 교육수준, 시대 상황 등에 의해 형성된 가치관을 반영하는 것이다. 한 가지 분명한 것은 “포도주가 반밖에 남아 있지 않다”는 말이나 “포도주가 반이나 남아 있다”는 말 모두 틀린 주장은 아니라는 점이다.

경제를 바라볼 때에도 크게 다른 두 개의 시각이 존재한다. 어떤 사람들은 경제는 스스로 치유하는 능력이 있기 때문에 정부는 경제를 그대로 흘러가도록 내버려두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고전학파 입장이다. 다른 한편에서는 경제의 자가치유력이 약할 수도 있고 때로는 작용하지 않을 수도 있기 때문에 정부가 적극 개입해서 경제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는 입장을 취한다. 케인스학파의 입장이다.

반쯤 채워진 포도주 보고 반밖에 없다는 사람도 반이나 남아 있다는 사람도. 이런 시각차는…

정통 고전학파보다 더욱 보수적인 입장은 개인의 자유와 제한된 정부, 사유재산권과 자유경쟁시장을 중시하는 자유방임주의이다. 애덤 스미스가 자유방임주의학파의 원조라고 볼 수 있다. 보다 급진적인 자유시장주의자들은 개인의 자유에 최고의 가치를 두며 정부를 개인의 자유를 방해하는 제도로 본다. 따라서 사유재산권이나 개인의 활동에 대한 정부의 어떠한 간섭도 배제한다. 마약의 합법화를 주장하는가 하면 근로소득에 대한 과세를 강제노동이라고 반대한다. 나아가 국가가 독점하는 통화체제의 폐지를 주장하기도 한다.

스펙트럼의 오른쪽 끝에는 개인의 자유를 최상의 가치로 내세우고 그에 대한 모든 억압적인 제도나 사회 관습을 거부하는 무정부 자본주의도 있다. 중도에서 왼쪽으로 이동하면 점점 진보적인 색조가 강해진다. 주류 케인스학파는 사유재산권과 시장의 역할을 중시하지만 시장이 완전하지 않다고 보고 정부의 개입을 옹호한다.

왼쪽으로 조금 더 옮겨가면 원래의 케인스학파보다 더욱 정부 개입을 옹호하는 후기케인스학파를 만나게 된다. 후기케인스 경제학자들은 시장 실패를 보다 심각한 것으로 보며 정부개입과 소득분배에 관해서 케인스보다 더욱 진보적이다. 그들은 국가 주요산업과 물가, 임금, 이윤의 통제, 정부지출을 통한 인센티브 및 징벌제도 도입, 정부에 의한 경제계획 기능의 강화 등을 주장한다.

오른쪽 끝에는 개인의 자유를 최상의 가치로
왼쪽 끝에는 사유재산권 부정하고 정부 개입

왼쪽으로 계속 이동하면 시장 그 자체보다 시장의 기반이 되는 법과 제도가 경제활동에 더 중요하다고 믿는 제도학파 경제학이 있다. ‘베블런 효과’로 유명한 소스타인 베블런에 의해 주도된 제도학파는 개인에게 영향을 미치는 제도 자체가 중요하며 따라서 사회구성원들의 행동을 결정짓는 ‘제도’를 중시해야 한다는 입장을 취한다. 제도주의자들은 미국의 사회보장제도 같은 복지정책 확립에 크게 기여했다.

한편 반시장주의 경제학자들은 시장을 인간사회의 전통적인 기능을 파괴하는 이상한 제도로 본다. 대표적인 학자 칼 폴라니는 산업혁명이라는 거대한 전환을 통해 인간과 자연이 상품화되는 충격을 겪고 시장은 문화 파괴적인 특성을 드러냈다고 주장한다. 자본주의는 토지, 노동, 화폐를 상품화함으로써 필연적으로 갈등을 내포하고 있다는 것이 그의 입장이다.

일반적으로 급진주의 경제학자들은 시장의 자체 조정기능을 믿지 않는다. 그들은 대체로 카를 마르크스의 계급투쟁을 이론체계로 사용하며 생산자원의 국유화를 지지한다. 자본주의 체제는 독과점화, 경기침체, 금융 파탄이라는 세 과정을 거치면서 수정을 거치게 된다. 왼쪽 끝 마르크스 경제학은 사유재산권을 인정하지 않고 국가가 자원의 생산과 분배를 결정하여 개인의 자유를 억제한다.

이렇게 경제 이념의 색깔은 다양하다. 고전학파 경제학은 국가의 개입이 없는 시장경제의 구현을, 케인스 경제학은 국가의 개입에 의한 시장경제의 보완을 추구한다. 그리고 마르크스 경제학은 국가의 자원분배에 의한 소득균등의 달성을 목표로 한다고 하지만 그 모두가 한계를 갖고 있다.

윤기향 경제학과 교수
서울법대 졸, 와튼스쿨 박사
플로리다애틀랜틱대 종신교수
2001년 ‘올해의 교수상’ 수상

spot_img

학교폭력! 도저히 못 참겠다

흰물결이 만난 사람김종기 푸른나무재단 명예이사장 아드님이 학교폭력으로 힘들어하는 느낌을 받은 적은 없었나요한번은 아들 얼굴에 멍이 들고 안경까지 망가졌어요. 깡패한테 맞았다고...

新聞이냐 舊聞이냐

발행인 윤 학 그림 이종상 어릴 적부터 신문을 보아왔다. 그런데 10년, 20년, 30년 신문을 보면 볼수록 신문新聞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어느 가족의 용서

첫 휴가도 나가기 전에 부대 내에서 불의의 사고로 20년 12일이라는 짧은 생을 살다 간 알렉산델의 아버지를 만났다. 알렉산델은 과속으로...

채빈이의 분노

이준원 교사마음지원센터 소장 채빈이는 책상과 의자를 집어던지며 교실을 쑥대밭으로 만들고 있었다. 나는 교실 뒤쪽에 앉아 씩씩거리다가 통곡을 하는...

요즘 세상에 신문을!

오랜만에 만난 후배가 찾아와 “아니 세상에, 신문을 발행하다니! 요즘 누가 신문을 읽어?”하고 걱정했다. 언론계에 있었던 후배는 내...

관련 기사

한 시간 기다린 게 아깝다고

윤기향 경제학과 교수 예스터데이 예전엔 나의 모든 괴로움이사라져 버린 듯했는데이제는 여기내 곁에 있는 것처럼 보여오! 지난날이 그리워요 갑자기 나는 평소보다초라해진 것 같아어두운 그림자가내 위에 드리워지고오! 지난날이 갑자기...

아베의 화살 과녁 맞췄나

아베 총리의 세 개의 화살론 윤기향 경제학과 교수 공중을 향해화살 하나를 쏘았으나,땅에 떨어졌네. 내가 모르는 곳에.화살이 너무 빠르게 날아가서시선은 따라갈 수 없었네.공중을 향해 노래를 불렀으나,땅에 떨어졌네....

가을의 전설

경제적 재앙은 왜 가을에? 윤기향 경제학과 교수 주여. 때가 되었습니다.그 여름은 위대했습니다.해시계 위에당신의 그림자를 드리우시고바람을 들판에 풀어놓아 주소서.마지막 열매들이탐스럽게 여물도록 명하시고그들에게 이틀만 더남쪽의 날들을 베푸소서.지금 집이...

투기로 얻은 것과 잃은 것

경제 위기 돈이 없어서라고? 윤기향 경제학과 교수 잃은 것과 얻은 것을놓친 것과 잡은 것을비교해보니자랑스럽게 여길 만한 것이별로 없구나.내가 아노니얼마나 많은 날들을 헛되이 보냈던고.실패는 승리로 둔갑할지 모르고썰물이...

유로존의 불안한 동맹

20인 21각 게임 윤기향 경제학과 교수 기쁠 때, 그대 가슴 깊이 들여다보라. 그러면 알게 되리라.지금 그대에게 기쁨을 주고 있는 것은 그대에게 슬픔을 주었던 바로 그것임을. 슬플 때에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