뭐 하나 잘 팔리면 다 따라해

고학찬 전 예술의 전당 사장

인디아나 존스 모자도 팔고
내 이름이 고학찬이니까 영어로 ‘Hak Ko’입니다. 그런데 미국 사람들은 내가 모자를 너무 잘 판다고 나를 ‘Hat Ko’라고 불렀어요.
롱아일랜드는 백인 동네인데 모자 장사가 없더라고요. 내가 프리마켓으로 모자를 판다니까 나보고 전부 미쳤다고 하는 거예요. 흑인들은 꼬불꼬불하고 미운 머리를 가리려고 모자를 쓰지만 백인들은 멋지고 치렁치렁한 금발인데 왜 모자를 쓰겠느냐 하더라고요.
그래도 “나는 한번 팔아보겠다” 하면서 인도어in-door 프리마켓에 조그만 가게를 차렸어요.

처음엔 백인들이 지나가면서 “뭐 이런 가게가 생겼어?” 그러더라고요.
마침 ‘인디아나 존스’라는 영화가 크게 히트를 쳤어요. 영화에 동굴 위에서 돌덩이가 떨어지고 돌문이 닫히려는 순간 주인공이 가까스로 빠져나오다 모자를 떨어뜨리는데 주인공이 그 위급한 순간에 다시 돌아가 모자를 갖고 나오는 장면이 있어요. 그래서 미국의 큰 모자회사가 ‘인디아나 존스 모자’를 만들었어요. 맨해튼에 가보니까 벌써 그 모자가 대인기더라고요. ‘이거다!’ 하고 그 모자를 주문했지요.

맨해튼에서는 이미 유행이었지만 롱아일랜드만 해도 시골이어서 깜깜할 때였지요. 그 모자를 갖다 놓고 백인 젊은 아이들이 지나가면 사라고 소리쳤는데 그게 유행인지를 모르니까 안 사더라고요.
그 동네에도 젊은 아이들이 다 모이는 나이트클럽이 있단 말이에요. 좀 노는 백인 아이들 3명에게 그 모자를 그냥 주면서 “이번 주말에 이 모자를 써봐라. 맨해튼에서는 이게 최고 유행이다” 했더니 그다음 주부터 아이들이 가게로 몰려오기 시작하는 거예요.
그 모자를 팔아서 히트를 쳤어요. ‘백인 동네에서 모자 팔아먹는 놈’ 이렇게 알려졌지요.

어느 날 한국에서 온 친구가 “너 모자 장사로 성공했다며?” 하길래 “성공해 봐야 얼마를 벌겠냐! 하지만 장사가 재밌다” 그랬지요. 그 친구가 매일 가게에 나와 내가 모자 사러 다닐 때는 나를 따라가기도 했어요. 미국에 처음 와서 할 일이 없었으니까요.
그러더니 그 친구가 한동안 안 나타나는 거예요.

‘이상하다’ 그랬는데 우리 가게 바로 앞에 누가 포장을 쳐놓고는 가게를 뚝딱뚝딱 수리하더니 똑같은 모자를 진열하고 가게를 연 거예요. 주인이 그 친구였어요.
“네가 하고 싶으면 얘기를 하지, 그럼 내가 다른 장사를 하면 되는데… 너랑 나랑 똑같이 앞뒤에서 팔아봐야 서로 힘들 테니 너 혼자 해라” 그러고는 내가 품목을 바꿨지요.

한국에서 온 친구가 ‘너 모자 장사로 성공했다며?’ 하더니
며칠 후 그 친구가 우리가게 바로 앞에 모자 가게를 내가 품목을 바꿔


제일 힘든 게 그릇 장사
나는 호기심이 많기 때문에 팔고 싶은 아이템도 굉장히 많죠. 뭐 하나 잘 팔리면 사람들이 다 따라 하니까 이집 저집에서 그걸 팔면 나는 바로 그만뒀어요. 여러 가지를 팔아 봤는데, 제일 힘든 게 그릇 장사였습니다.
그 당시 대우에서 ‘대우 웨어’라는 그릇을 수출했어요. 뉴저지에 아는 친구가 있어서 가보니까 어마어마하게 큰 창고에 안 팔린 그릇이 가득 쌓여 있었어요.

미국 사람들은 당시만 해도 커피를 머그잔에다 마시지 않습니까! 우리는 밑에 받침이 있는 잔으로 커피를 마셨는데 그것을 미국에 잔뜩 수출해 놓으니 팔리겠습니까?
창고사용료만 계속 나가니까 외상으로 줄 테니 가져가서 좀 팔아보라고 그러더라고요. 그 커피잔들이 정말 예뻐서 팔릴 수도 있겠더라고요.

막상 장사를 해보니 사기로 된 커피세트라서 무지하게 무거워요. 차에 싣고 다니면서 팔려니 깨지기도 하고 참 고생이 많았어요.
무엇보다 안 팔리는 거예요. 어쩌다가 할머니들이 지나가면서 만지작거리다가 어렸을 때 유럽에서 이런 찻잔으로 먹었다고 해요.

자기 시집올 때 엄마가 사다 준 게 생각난다면서 사지는 않고 넋을 잃고 보기만 하죠. 그 아들, 딸들이 할머니 생일에 선물한다면서 가끔 팔리기도 했어요.
당시는 미국 사람들이 플라스틱 아니면 스테인리스를 쓰던 시절이라 사기그릇이 팔릴 리가 없지요. 실용적이 아니니까 미국 사람들의 생활패턴에 전혀 안 맞았던 거예요. 그래서 망했어요.

신발과 드레스로 히트치고
히트 친 게 모자하고 머플러, 장갑, 비닐 신발이에요. 뉴저지에 가면 옛날 미국의 노예시장을 그대로 보존해 둔 잉글리시 타운이 있어요. 그곳에 무지하게 큰 시장이 서는데 도로포장이 안 되어 있어 비만 오면 진창이 되어서 구두를 다 버리는 거예요.
그런데 브로드웨이에 가봤더니 비닐로 만든 싸구려 신발이 있어 사다가 팔았습니다.

비가 오면 장사꾼이건 물건을 사러 나온 사람이건 전부 내 비닐 신발로 갈아신어야 했어요. 반짝 아이디어 상품이었는데 재미를 톡톡히 봤지요.
나중에는 ‘노바’라는 상표를 가지고 옷을 직접 만들어 도매를 했어요.

공장에 외주를 주어 만들어 팔았는데 드레스를 많이 팔았어요. 미국 사람들은 성년식이나 졸업식 때는 꼭 드레스를 입으니까요.
흑인들은 보통 사이즈 옷은 못 입으니까 빅 사이즈를 전문으로 취급해서 흑인들에게 많이 팔았죠.

고학찬 전 예술의 전당 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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