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결혼만 하면 아파트 한 채씩 무상으로 주는 날이 곧 옵니다” <돈과 영성> 강의 때 내가 이런 말을 하면 참석자들은 엉뚱한 소리라는 듯 바라본다. 그러나 나는 그런 일이 2~30년 안에 일어날 거라고 확신한다.
과거에는 궁정 안에서 귀족만 클래식 연주를 들을 수 있었다. 그 시절 승용차를 타고 이동하면서 누구나 음악을 마음대로 골라 듣는다는 것은 상상도 못 했을 것이다. 내가 처음 서울에 왔을 때 고향 집에 전화하려면 광화문 전화국까지 가서 시외전화를 신청해야 했다. 그러면 고향 우체국에서 우체부가 아버지를 모시고 우체국에 돌아와 광화문 전화국으로 전화를 걸어 호명받은 내가 전화박스에 들어가 아버지와 통화할 수 있었다. 불과 몇십 년 전인 그 시절 언제 어디서나 통화하는 휴대폰을 상상이나 했겠는가.
과학은 얼마 전만 해도 상상조차 못 했던 일을 현실로 만들고 있다. 언제 어디서나 음악을 듣고, 전화하는 세상은 무산계급 혁명이 아니라 과학이 만들어 낸 것이다.
그 엄청난 일을 일궈낸 과학의 뿌리에는 상상력이 존재한다. 그런 세상을 꿈꿨던 사람들이 없었더라면 우리는 오늘의 현실과 만나지 못했을 것이다. 지금도 온 세상 사람 모두가 근사한 아파트 한 채씩 갖도록 하는 꿈을 꾸는 사람이 있을 것이다. 비좁은 도시에 백 배도 넘는 인구를 살게 하겠다는 상상력이 초고층 아파트를 만들어 냈듯이, 50평 고급 아파트 한 채씩을 국민 모두에게 나누어주겠다는 상상력이 그런 현실도 만들어 내지 않겠는가. 그때가 되면 AI가 식사도 입맛에 맞게 만들어 내고, 어울리는 패션도 터치 하나로 추천해 줄 것이다.
50평 고급 아파트 한 채씩 국민 모두에게 나누어주겠다는 상상력이 그런 현실도 만들어
그러나 전화기며 자동차며 모든 것이 예전과는 비교할 수 없이 풍족하게 되었지만 사람들은 현실은 갈수록 어렵다며 아직도 돈타령, 아파트 타령이다. 수천 년 전부터 그런 타령은 멈춘 적이 없다. 주택 한 채씩 무상으로 주는 시대가 되어도 사람들은 그때 또 다른 타령을 할 것이 틀림없다. 그럼에도 우리는 무엇인가 가지는 데만 초점을 맞추며, 소유가 적으면 불행하다는 착각에 빠져 있다. 이 착각에서 벗어나지 않으면 인간은 계속 불행할 수밖에 없다. 이 착각에서 벗어날 길은 없는가.
인간은 우주를 소유해도 만족하지 않을 만큼 더 높은 가치를 향해 가는 귀한 존재이다. 그래서 인간은 소유가 아니라 우주보다 더 높은 자신의 가치를 되찾을 때만 행 복해질 수 있다. 그 높고 귀한 가치를 어떻게 되찾을 것인가. 도끼는 도끼로 쓰일 때 가치를 발하듯 인간도 인간으로 쓰일 때 가치가 빛난다.
우리는 지금껏 더 많은 것을 생산하고 더 많은 부를 쌓고 더 높은 자리를 차지하기 위한 일만 해왔다. 재산과 권력이 자신을 가치 있는 존재로 만들어 줄 거라고 믿었지만 그런 가치를 추구하면 할수록 돈과 권력의 가치만 높아지고 인간의 가치는 낮아질 뿐이었다. 선동과 속임수로 권력, 재력을 쌓는 것보다 인간을 가치 없게 만드는 것이 없는데도 인류는 오히려 자신의 가치가 높아진다고 믿으며 가치의 전도 속에서 살아온 것이다. 그러나 앞으로는 기술의 힘으로 입고 싶은 옷, 먹고 싶은 음식, 살고 싶은 집 등 과거 그 어떤 권력자도 누린 적 없는 삶을 살게 되고 그 어떤 부자도 가진 적 없는 재력도 갖게 될 것이다.
지금껏 육체와 정신노동만 인정받고 영성은 도외시
AI 시대 ‘영성’의 가치 인정받게 될 것
공기와 물은 언제나 얻을 수 있어 그것을 얻으려고 몰두하는 사람은 없다. 그렇듯 집도 쉽게 얻을 수 있다면 더 이상 재산을 늘리는 데 몰두하는 사람도 없을 것이다.
과거 노동력 시대에는 육체노동이, 지식정보의 시대에는 정신노동이 가치를 인정받았다. 그런데 육체노동으로 가치를 인정받던 옛사람이 지식정보 시대에 가치 없는 존재로 전락했듯이, 지식정보 시대에 가치를 인정받던 사람도 AI시대에는 가치 없는 존재로 전락할 것이다. 그렇다면 AI시대에는 어떤 가치를 가진 사람이 되어야 할 것인가.
지금껏 육체와 정신노동만 그 가치를 인정받고 영의 영역은 도외시 되었다. AI 시대에는 인간이 그동안 잠재워 두었던 ‘영성’으로 살아갈 때 가치를 인정받게 될 것이다. AI가 육체와 정신의 일은 할 수 있지만 영성적인 일을 할 수 있겠는가. AI가 인간의 모든 역할을 할 수 있다면 인간은 자신의 가치를 발휘할 기회조차 없을 것이다. 얼마나 다행한 일인가. 어쩌면 인류의 상상력이 만들어 낸 과학은 인간에게서 육체와 정신의 역할을 빼앗기 위해 발휘되어 왔는지도 모른다. 육체와 정신이 하는 일을 빼앗아 기계와 AI가 하도록 하여 인간 스스로의 가치를 높이는 데만 사용하도록! 인간이 재산과 권력의 가치는 높이면서도 스스로의 가치를 낮추는 데 쓰지 않도록!
인류의 상상력이 만들어 낸 과학은 인간에게서 육체와 정신의 역할을 빼앗기 위해…
예수도 육체노동이나 정신노동보다 영적인 일을 더 중시했던 이유일 것이다. ‘서로 사랑하라!’ 그는 영적인 일이 무엇인지 우리에게 이미 알려주었다. 영성을 가진 존재로서의 인간은 부와 권력이 아니라 사랑과 용서, 평화를 추구할 것이다. 2천 년 전 예수가 애타게 외쳤던 것처럼 인간이 진정으로 해야 할 일, 하고 싶은 일이 우리 앞에 다가오고 있는 것이다. 인류는 AI가 인간의 일자리를 빼앗는다고 걱정하고 있다. 그러나 그동안 권력과 재산을 높이는 데만 사용된 육체와 정신을 무력화시키는 것은 인류에게 너무나 희망적인 일이 아닐까.
수천 년 동안 무수히 많은 사람들이 재산과 권력으로 세상을 바꾸려 했다. 그러나 그럴수록 세상은 돈과 권력만 좇는 시궁창으로 빠져들었다. 예수는 인간의 가치를 높일 때만 세상이 바뀐다는 것을 애타게 부르짖었다. 하지만 사람들은 자신의 가치를 높이는 데 힘을 쏟지 않았다. 그래서 과학의 힘으로 인간의 가치를 높이는 데 매진하도록 역사를 진화시켜 온 것이 아닐까?
인류에게 아직 할 일이 남아 있다는 사실은 우리 인류가 얼마나 축복받은 존재인가를 새삼 깨닫게 한다. 이제 상상력은 과학을 위해서가 아니라 나 자신의 가치를 높이는 일에 쓰여야 한다. 그럴 때만이 우리는 진정 행복하게 살아갈 것이다. 나는 사랑으로 무엇을 할 수 있는가? 그걸 찾아가는 상상력이야말로 지금 내가 해야 할 일이 아닐까.
발행인 윤학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