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벗이 갔어”

김지영

46년째 한집에서 살며 동네 분들과 꾸준히 만나셨던 엄마가 가라앉은 목소리로
“말벗이 갔어” 하신다. 딸 넷에 손주에 이모에 동창에 벗이 그렇게나 많은데, 말벗이라니…

엄마는 46년째 한집에서 살고 계신다. 골목 한 줄로 한 동네가 가족처럼 지냈는데 그분들이 하나둘씩 다른 곳으로 떠나갔다.
넓은 옛집들은 아파트로, 빌라로, 때론 병원 건물로 바뀌어졌다. 엄마는 아버지가 돌아가신 후에도 그때 그 동네 분들과 한 달에 한 번 꾸준히 만나셨다. 그중 아주머니 몇 분과는 식사도 하고 계절마다 가까운 곳으로 여행도 다니셨다.

얼마 전 엄마에게 전화를 드렸다. 엄마의 목소리가 많이 가라앉아 있었다. “안 아프다, 괜찮다” 두어 번 그러시더니 “지영아, 사실은 말벗이 갔어”
엄마에게 말벗이라니, 딸 넷에 손주에 이모에 동창에 벗이 그렇게나 많은데, 말벗이라니… ‘말벗’이라는 엄마의 표현에 아버지 없이 오랫동안 반쪽으로 살아오신 엄마의 깊은 외로움이 한꺼번에 전해져왔다.

“옛날에 순아네라고 알지?” “응” “그 집에 세 들어 살던 아줌마인데 오래전에 아파트 사서 지금은 잘 살아. 자식들도 공부 다 시키고 잘 키웠어.
근데 남편이 아프거든. 그래서 4년 전부터 아줌마가 우리 집에 오고 있었어. 한 달에 한 번. 같이 반찬도 만들어 먹고 밥도 지어 먹고 우리 집 청소도 해주고, 한 달 동안 못 한 얘기도 나누고… 말벗이었는데, 참 좋은 말벗이었는데 어제 돌아가셨어. 갑자기 쓰러져서…

아줌마가 여기 오는 거 나만 알거든. 다른 아줌마들에게는 그동안 비밀로 했어. 아줌마가 자존심 상할까 봐… 가끔 그릇도 싸주고 옷도 싸주고 그랬는데…
아줌마랑 옷 사이즈를 같이 입거든. 그동안 입던 거만 줘서 새 바지 하나를 사다 놨었는데… 다음 주면 오는 날인데… 너무 미안해…
어젯밤에는 종석이에게 좀 데려다 달라고 해서 장례식에 다녀왔는데 영정사진을 보니까 내 잠바를 입고 있잖아… 마음이 얼마나 아프던지… 아줌마 사진 밑에 아줌마에게 쓴 편지랑 꽃이랑 두고 왔어”

엄마는 잠깐잠깐 말을 끊으시면서 아줌마와 엄마의 이야기를 해주셨다.
그 후 나는 말벗에 대해, 부부에 대해 생각하게 되었다. 어제는 후배가 메일을 보내왔다. 긴 메일에 이렇게 끝말을 남기고 있었다. ‘어서 와 말벗이나 돼주구려-’

사실 나는 말벗에 대해 처음으로 생각해 보고 있는 중이었다. 쉬운 말벗 하나 없이 홀로 지내온 엄마와 내 남편에게 미안하고 미안했다.
우리는 누군가에게 진짜 벗이 되고 있을까? 때론 꽃잎처럼 때론 양토陽土처럼 명랑하고 순한 말벗이 되고 싶다.
외로웠던 긴긴 시간, 엄마에게 따뜻한 한 사람으로 오랜 시간 말벗이 되어주신 아주머니에게 진심으로 고마운 마음을 전하고 싶다.

spot_img

문화의 시대 우리는 문화적인가!

발행인 윤학 장인어른은 가끔 할아버지를 회상하곤 했다. 국민학교에 두루마기 차림으로 가끔 찾아오셨었다는 이야기며, 갓을 쓰고 장에 다녀오시다가 멀리 고갯길에서 무언가...

인생은 아름다워(Life is beautiful)

데스 브로피 Des Brophy 화가 가난 속에서도 어머니는 음악이 있으면 우리와 함께 항상 춤을 췄죠. 제 그림 중에 춤추는...

왕따 인생

고학찬 전 예술의 전당 사장 “딴따라과 나온 네가 어떻게 PD 시험을…”내 인생은 왕따 인생이에요. 중학교는 제주도에서 다니고 고등학교를 서울 사는...

요한 바오로 2세 말씀

요한 바오로 2세 내가 한 번도 안 간 나라가 많은데 한국에는왜 두 번씩이나 오게 되었는지 아시오? 내가 1984년, 한국교회 2백주년 행사...

권력버블의 정점

발행인 윤학 일본 사람들이 벼락부자의 꿈을 꾸기 시작했다. 자고 나면 오르는 부동산이 금세 팔리고 은행 융자로 더 비싼 땅을 사면...

관련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