땅값 올라 돈 번 동네 사람들

조유진 자영업

마장동이 대한민국에서 제일 큰 축산물 시장이잖아요. 초등학교 동창이 군 제대하고 고기 장사를 했는데, 날 보고 같이하자는 거예요.
1970년 영동대교 놓이기 전에 나룻배를 타고 마장동으로 가서 쇠고기 부산물 장사를 7년 동안 했지요. 그러다 청담동으로 나와서 정육점을 냈어요. 그런데 사실 내가 장사 체질은 못돼요. 사골을 5천 원에 사다가 1만 원에 팔면 꼭 내가 5천 원을 도둑질하는 것 같았거든요.

그래서 7천 원만 받으면 될 것 같더라고요. 손님들한테 “내가 이거 사실 5천 원에 가져와서 1만 원 받으면 이익이 너무 많이 남으니까 3천 원 도로 갖고 가시라”고 했어요. 그러고 나니까 마음이 좀 편하더라고요. 그런데 그게 오히려 돈 버는 데 도움이 되었어요.
그렇게 장사를 했더니 손님들이 끊이지 않아 1980년대 초에는 하루에 거의 소 한 마리를 팔았어요. 그 골목에서 내가 제일 장사가 잘됐어요. 가게가 6개 있었는데 결국 나 하나만 남았죠.

돈 버는 것, 먹고 사는 것도 그리 어렵지 않더라고요. 나는 빌라가 두 채여서 한 채를 팔면 노후에 먹고 살 정도는 돼요. 그래도 강남이니까 빌라지만 값이 좀 나가잖아요. 그걸로 만족해요.
지금 사는 데가 강남이니까 돈 많은 사람들 참 많잖아요. 그런데 나 같은 원주민은 10%도 안 돼요. 내가 25살에 군 제대를 하고 집에 왔더니 강남이 뒤집어졌더라고요. 70년대부터 복부인들이 드나들더니 말 그대로 상전벽해가 됐어요.

오천 원에 들어온 고기를 만 원 받고 팔면 이익 너무 많이 남아
손님들한테 돈 돌려줬더니 손님 끊이지 않아 결국 내 가게만 살아 남아

지금 잠원동이나 잠실이나 원래가 누에 기르던 뽕나무밭 아니에요? 나보다 네 살 더 먹은 형이 그때 복부인 1호들하고 땅장사를 해 돈을 어마어마하게 벌었어요.
형은 초등학교 2학년 때 6·25가 터져 전혀 공부를 못했어요.

그러니까 돈을 관리하고 쓸 줄을 몰라요. 70년 초에 어머니가 돌아가시고 나니까 이제는 형을 컨트롤할 사람이 없잖아요. 집 나가면 일주일 있다 들어오기도 하고 그냥 형 마음대로 사는 거예요.부엌 하나 달린 작은 방을 간신히 구해 계획에 없던 이사를 했다. 앞으로도 세 아이와 2년에 한 번씩 이사 다닐 생각을 하니 앞이 막막했다. 어느 날 아파트 분양 광고가 눈에 띄었다. 마치 나를 위해 준비한 듯이. 아이를 둘러업고 분양사무실을 찾아가 청약신청을 했다. 그렇게 온전히 우리 가족의 힘으로 처음 집을 갖게 되었다.

결국은 형이 우리 땅까지 물고 들어가더라고요. 형이 군대 갔을 때 어머니하고 나하고 악착같이 벌어서 땅을 사놨었거든요. 지게질하고 낫질하고 품삯 받아서 400평을 샀지요. 지금 삼성역 그쪽이 우리 땅이었어요.
왜 ‘형님은 반半 부모’라고 하잖아요. 내 땅이지만 형 앞으로 등기를 해놨었거든요. 형이 그 땅에 집 지어서 한동안 살더니 결국은 팔아버렸어요. 안 팔고 지금까지 갖고 있었으면 어마어마한 돈이 됐겠지요. 땀 흘려 번 돈이 아니면 내 돈이 아녜요.

옛날 우리 마을 사람 중에 형처럼 땅값 올라서 돈 번 사람들이 많아요. 그런데 갑자기 돈이 많아지면 사람이 90% 잘못 가요. 그전에 농사짓던 강남의 원주민들이 땅을 팔아서 큰돈을 만졌다가 대부분 망했어요. 돈 있으면 술 생각나고 여자 생각나고, 노름하게 돼요.

그리고 돈 있으면 꼭 사기꾼이 붙어요. 정육점에서 날 더울 때 고깃덩어리 남은 것이 떨어지면 파리들이 꼭 덤벼요. 그처럼 인간도 이익이 있는 데는 그렇게 덤비게 되어 있어요. 사실 고기 장사도 예전만큼은 안 돼요. 웰빙 시대가 되면서 고기를 덜 먹거든요. 하지만 나로서는 돈이 덜 벌리는 게 어떻게 보면 잘된 거예요.

돈이 많이 벌리면…

조유진 자영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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