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 들지 않는 어묵국물만

오택

‘토주회’ 회원은 네 명. 고등학교를 같이 다니고 졸업 후 3년 동안 망망한 대서양에서 원양어선도 같이 타며 지냈다. 군대도 같은 해에 입대하고 제대했지만 아직 직장을 구하지 못하고 있을 때였다. ‘전우애’를 앞세워 허구한 날 함께 술을 마셨다. 누군가 일주일에 한 번, 토요일만 만나 술을 마시자고 해 모임이 결성되었다. 그런데 우리는 다른 요일에도 핑곗거리를 만들어 거의 매일같이 만났다. 겨우 소주 3병을 살 수 있는 돈만 가지고 나와 읍내 구멍가게 ‘두꺼비집’에 들어앉아 과자 부스러기와 무용담을 안주 삼아 술잔을 기울였다.

그나마 그 정도의 술값도 없는 날은 천렵을 했다. 어찌어찌 도구를 구해 미꾸라지가 있음 직한 들녘을 뒤졌다. 추어탕에 넣을 대파는 돌아오는 길에 주인을 알 수 없는 파밭에서 ‘슬쩍’ 했다. 소주는 누나의 횟집에서 일을 돕던 친구를 찾아가 해결했다. “상남아!” 부를 때마다 그는 말없이 소주 몇 병이 담긴 까만 비닐봉지를 내밀면서 마치 ‘듣지 않아도 다 알고 있다’는 듯 사람 좋은 웃음을 지었다.

“국물만 더 주세요” ‘돈 안 드는 안주’만 계속 주문 그때마다 아주머닌 국물에 어묵 보태 건네

그것도 염치없어질 때쯤 읍내에서 이웃집 아주머니가 하는 포장마차를 발견했다. 우리는 저녁마다 그 포장마차를 찾아가 어묵 한 그릇을 시켜놓고는, 이미 한 얘기를 몇 번이고 다시 꺼내 처음 하는 것처럼 떠들며 웃었다. 어묵 한 그릇은 금세 비워졌다. 우리는 “국물만 좀 더 주세요” 하며 ‘돈이 들지 않는 안주’를 계속 주문했다. 그때마다 아주머니는 말없이 선한 웃음을 지으며 어묵 몇 개를 보탠 국물 그릇을 앞에 놓아 주었다. 어느 날은 아주머니가 “총각! 국물은 더 줄 테니 간을 맞출 간장은 집에서 가지고 오시지” 농담조로 말했다. 그날 밤 우리는 오래 웃으며 고마워했다. 그 말은 당시 우리의 딱한(?) 사정을 대변해 주는 ‘토주회 어록’으로 남았다.

1년쯤 지나 우리는 한 사람씩 직장을 잡아 떠났다. 결혼하고 아이들도 키우며 거의 만나지 못하고 살았다. 나도 결혼하고 두 딸을 얻었다. 작은딸은 중학교에 들어가자 사춘기가 찾아와 엇나가기 시작했다. ‘자식은 오냐오냐 키우면 안 된다’는 소신이 있었던 나는 딸을 다그쳤고 다그칠수록 딸은 심하게 반발하면서 더 엇나갔다. 급기야 딸은 대학에 들어간 지 1년 만에 자퇴하고 집을 나가 아르바이트를 하며 생활했다.

나는 막다른 상황과 마주하게 되었다. ‘우리가 왜 이렇게 되었을까?’ 자책이 밀려왔다. 나는 결국 ‘자식이니까 지켜보며 사랑해 주자’는 아내의 뜻에 따르기로 했다. 그동안의 서운함과 마음의 앙금을 모두 뒤로하고, 딸이 원하는 것은 명백하게 잘못된 것이 아니라면 무조건 조용히 지원하고 사랑해 주기로 했다. 내가 비슷한 시절을 지나올 때 토주회를 지켜보아 준 그 이웃들처럼.

4년 뒤 딸아이에게서 도움을 요청하는 전화가 걸려 왔다. 그동안 ‘자신의 길’을 찾다가, 다니고 싶은 직장에 지원하려고 했는데 ‘고졸 학력’으로는 원서조차 낼 수 없다고 하소연했다. 아내는 이미 이런 날이 올지도 모른다며 학교를 찾아가 자퇴서를 휴학계로 바꾸어 놓았었다. 딸은 복학해 눈물겨운 노력 끝에 대학을 졸업하고 원하는 직장에도 들어갔다.

고뇌하고 방황하는 누군가를 지켜보며 기다려 준다는 것이 때론 너무 중요한 사랑의 길

사랑한다는 것은, 그 대상을 위해 ‘하거나 하지 말아야 할 일’을 식별하는 것에서부터 출발해야 한다는 것을 절절하게 깨달았다. 고뇌하고 방황하는 누군가를 지켜보며 기다려 준다는 것이 때로는 너무나도 중요한 사랑의 길이라는 것도 알게 되었다. 퇴직도 같은 해에 한 우리는 ‘토주회’를 부활시켰다. 물론 젊었던 그 시절로 고스란히 되돌아갈 수는 없는 노릇이지만, 가끔 만나 ‘순수의 계절’을 회상하는 것만으로도 참으로 즐겁고 유쾌했다.

그 시절 ‘두꺼비집’ 사장님과 친구 ‘상남이’, ‘간장 어록’을 남긴 포장마차 아주머니는 기억 속에 평생의 친구이자 은인으로 남았다. 막연한 불안과 설렘 속에서 ‘세상의 길’을 찾던 청춘을 지켜보며 따뜻하게 보듬어 준 그들은 그때는 몰랐지만 ‘크나큰 사랑’이었다. 오늘도 푸른 신호등 아래 서 있는 앞차를 잠시 기다려주고, ‘빵빵’ 경적을 울리는 뒤차의 급한 볼일도 짐작해 보면서 ‘사랑하며 기다려주는’ 하루를 산다.

오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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