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을 써야 돈이 들어와

박영헌 유덕산업 대표

요즘 한 가지 일을 꾸준히 하는 사람이 드물어요. 그런데 유덕산업을 수십 년간 탄탄하게 운영해 오셨다고요
종로3가 관수동 골목에서 비가 오나 눈이 오나 아내와 같이 상패와 트로피, 휘장을 제작 판매하는 일을 해왔죠. 꾸준히 하다 보니 어느새 건물도 세우게 됐지만 제가 건물주인인지조차 모르는 사람들이 많아요.(웃음) ‘근검절약’과 ‘미소 띤 얼굴’이 사업을 지금까지 탄탄하게 이끌어온 비결 아닌가 싶어요.
건물이 하나 있었으면 했는데 마침 적당한 땅이 나왔어요. 공학도 출신이어서 기초 설계부터 벽돌 몇 장, 철근 몇 가닥까지 다 직접 계산했죠. 인터넷 다 뒤져서 철골회사도 찾고 직접 인부도 구하고 벽돌, 모래도 샀죠. 공사 다 끝나고 보니 철근 딱 한 가닥만 남았더라고요.

관수동 골목에서 비가 오나 눈이 오나 출근
근검절약 해 건물도 세워 ‘미소 띤 얼굴’이 비결

인터뷰 중에도 이웃들과 손을 흔들고 웃으며 인사를 나누시네요. 언제부터 그렇게 웃고 사셨어요
불가에서 돈 없이도 베풀 수 있는 보시(布施) 중에 화안시(和顔施)가 있어요. 어릴 때 아버지가 사업을 하셨는데, 1년에 서너 차례 집에 오시면서도 늘 찡그리셨어요. 아버지가 오시면 어머니는 아버지 옆에 제 잠자리를 펴주지만 육친의 따뜻한 정을 느끼기가 어려웠죠. 어떻게 하면 아버지를 웃게 해드릴까? 제 나름의 계획을 짰어요. 할머니가 마당과 집을 오르내리기 불편해하셔서 제가 계단을 만들어드렸는데 강에서 조약돌을 가져와 계단마다 ‘언 제 나 웃 자’를 한 글자씩 심었죠. 그랬더니 아버지가 마당에 들어설 때마다 씨익 웃으시는 거예요.

2006년 직장암, 대장암 말기 진단을 받고 하늘이 노랬어요. 수술 직전 의사가 “간에도 전이가 된 것 같다. 대장과 간을 동시에 수술해야 한다”고 하는 거예요. 성공 확률도 모른다길래 답답한 마음에 시간이 얼마나 걸리겠냐고 물었더니 “간까지 퍼졌으면 8시간, 그렇지 않으면 5시간 30분이면 된다”고 했어요. 수술이 끝나고 정신이 들자마자 가장 먼저 시계를 봤어요. 낮 1시 50분이었죠. 아침 8시에 수술 들어갔는데 한낮이니 간으로는 암이 안 번졌다는 얘기 아니겠어요! 그 아픈 중에도 누워서 씩 웃었어요. 간호사는 내가 실성이라도 한 것 같은지 염려스럽게 쳐다봤죠. 감사한 마음에 의사, 간호사들하고 일일이 다 악수를 했는데 그때가 내 인생 최고의 순간이었어요. 항상 웃고 다녔더니 사람들이 제가 암환자라는 사실을 잊는다고 하더라고요. 어쩔 때는 저마저도 환자라는 사실을 잊었어요.(웃음)

항암치료 고통이 상당하셨을텐데요
항암치료를 경험해 보지 않은 사람은 그 통증을 상상하지 못해요. 그런데 그 고통도 생각에서 비롯되더라고요. 다른 일에 몰두하면 그 고통을 잊을 수 있죠. 제가 순천박씨 돈녕공파 종친회장을 맡으면서 족보를 데이터베이스로 구축하는 계획을 10년 잡았죠. 매일 입력해왔는데 수술하는 날 아내가 족보를 들고 왔어요. 이 일을 벌여놨으니 빨리 나아서 다 마치라고, 힘내라는 뜻이었죠.

암 말기였지만 수술 후 간으로 전이 안 됐단 소식에 씩 웃어
간호사는 내가 실성했나 싶었다고

방사선치료 28번, 항암치료 30번 해서 8개월 동안 집중치료를 했는데 30분 주기로 극심한 고통이 왔다가 사라지기를 반복했어요. 통증이 올 때마다 저는 컴퓨터를 켜고 족보 입력을 했죠. 하루에 40~ 50번씩 화장실을 가면서도, 하루 5시간씩은 그 작업에 매달렸어요. 자손이 끊어져서 기록이 없는 무연고자 집안이 있어요. 그분들 이름이라도 남아야 한다고 생각해서 다 입력했죠. 한분 한분 이름을 올리면서 그분들을 기억했는데 그 조상들이 나를 돌봐줘서 고통을 이겨냈다는 생각이 들어요.

부자가 될 수 있었던 비결이 뭐예요
돈을 써야 돈이 들어와요. 책상머리에서 공부만 해서는 그걸 알 수 없어요. 실질적인 세상살이, 자연의 이치를 알아야 돈을 벌 수 있죠. 고인 물이 썩듯이 돈도 그대로 가지고 있으면 더 불지 못하고 굳어버려요. 그런데 오히려 빼내면 들어오고 또 빼내면 들어오죠. 자주 빼낼수록 회전이 빨라요.
제 시간과 돈을 쓰며 종중 일을 하니, 종중 사람들이 제 고객이 되었어요. 항상 웃는 낯으로 상가번영회 궂은일을 묵묵히 해내니 사람들이 저를 신뢰해 주고 고객들을 소개해 주었죠. 그래서 저는 필요한 곳에는 돈을 잘 내놓아요. 복지관에도 주고, 동창회 장학금도 주고. 제가 9남매 장남인데 집안에 누가 대학 가면 첫 등록금은 무조건 내줬어요. 그러다 보니 집사람이 적금을 들어도 만기 때 타본 적이 없어요.(웃음) 그런데 첫 등록금을 내주고 느끼는 기쁨은 뭐라 말할 수 없이 크죠.
그렇지만 사무실 여직원한테는 꼭 이면지를 쓰게 해요. 인쇄를 잘못하거나 물건 함부로 버리면 혼내죠. 여직원이 “우리 사장은 작은 돈은 아끼면서 큰돈은 푹푹 쓴다”고 투덜대기도 해요.

한번은 집사람도 장모님께 투덜댄 모양이에요. 그때 장모님이 집사람에게 이런 말씀을 해주셨대요. “하늘이 준 네 바가지는 정해져 있어. 큰 바가지면 물이 크게 모일 것이고 작은 바가지면 작게 모여. 그런데 자꾸 네 바가지에만 물을 쏟아부으면 흘러넘쳐. 하지만 남한테 떠주면 그 사람이 달게 마시고 네 바가지를 누군가가 채워줘. 쓰면 쓸수록 버는 거니까 속상해 말거라” 장모님 말씀이 바로 제 마음이에요.

박영헌 유덕산업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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