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 별거 있습니까

발행인 윤 학

오래전 대통령 후보로 나서겠다는 인사를 만난 적이 있다. 내가 그 어려운 직책을 어떻게 감당할 수 있겠느냐고 묻자 그가 “전직 대통령도 여러 명 만났는데 별사람 없던데요. 대통령 별거 있습니까?” 하는 것이었다. ‘아! 이 사람 참 통 큰 사람이구나’ 하면서도 일말의 불안이 싹터왔다.

대통령 후보가 “대통령 별거 있습니까?” ‘아! 이 사람 통 큰 사람이구나’ 하지만 불안이 결국 그는…

태산처럼 여겨야 할 국정을 어떻게 이끌지 고뇌는 없고 ‘대통령 자리’의 높낮이만을 가늠하고 있는 것 같았기 때문이다. 그의 배포로 보아 대통령 자리에는 올라설 것 같았지만 대통령다운 대통령이 될 수 있을까 의구심이 들었다. 아내에게 그 말을 했더니 “대통령을 그렇게 쉽게 여기는 사람이 대통령이 되어도 괜찮은 거냐”며 몹시 놀라워했다. 예상대로 그가 대통령에 당선되었다. 산은 결코 누구에게 정복당하지 않는데 사람들은 정상에만 오르면 그 산을 정복했다고 말한다. 정상 도달만을 목표로 하는 사람은 그를 맞아주려고 피어있는 꽃도 햇살의 따사로움도 느끼지 못한다. 부드럽게 와 닿는 산들바람도 나무들의 속삭임도 듣지 못한다.

정상에 오르는 것만으로 산을 정복했다고 믿듯 일류대학에 들어가는 것으로, 높은 자리에 올라가는 것으로, 큰 부를 쌓는 것으로 정상에 올랐다고 믿는 사람이 많다. 그렇게 살아가는 사람은 ‘인생 별거 아니다’라는 말밖에 할 수 없게 된다. 일류대학도, 높은 자리도, 엄청난 재산도 정말 별거 아니라는 것을 뼛속 깊이 느낄 때가 반드시 오기 때문이다.

우리 주위에도 “인생 별거 있습니까?”하고 호기를 부리는 통 큰 사람들이 많다. 인생을 별거라고 여기는 사람은 결코 그런 말을 하지 않는다. 태어나고 배우며 일하고 사랑하는 그 하나하나가 얼마나 가치 높은 일인가! 나는 ‘인생은 별거 아니다’라고 말하고 싶지 않다. 내 인생을 별거로 만드는 것이야말로 ‘별거 아닌 대통령’이 되는 것보다 훨씬 소중한 일이기 때문이다. 대통령직의 엄중함을 인식하면 대통령으로서 해야 할 일에만 집중할 것이다. 마찬가지로 인생의 소중함을 인식하면 내 인생을 위해 해야 할 일에 정성을 다할 것이다.

정상에 오르면 산 정복했다 믿듯 부와 자리로 정상에 오른 사람은 ‘인생 별거 아니다’는 말밖에

‘나’는 무엇인가? 대통령 지위도, CEO 직책도, 일류대학 학위도, 엄청난 재산도 ‘내’가 아니다. 내가 과거에 어떻게 살아왔고 현재 어떻게 살고 있으며 미래에 어떻게 살려고 하는지, 바로 ‘내 삶’이야말로 ‘나’인 것이다. 사람의 가치는 사람들이 우러러보는 무언가가 아니라 그의 삶을 채우고 있는 그 무엇에 의해 결정된다. 높은 자리에 앉아도 가치 낮은 삶이 있고 낮은 자리에 있어도 가치 높은 삶이 있다. 그런데도 우리는 높은 자리에 올라야만 가치 있는 삶을 살 수 있다고 생각한다.

대통령이건 정치지도자건 재벌 회장이건 그 삶이 부실하다면 부실한 사람일 수밖에 없다. 우리는 높이 오를수록 부실한 삶을 살아가다 한없이 추락하는 사람들을 늘 보지 않았던가. 자리를 누리는 데 힘을 쏟다 국민들로부터 멸시와 치욕을 당하며 내려오는 대통령도 수없이 보지 않았던가. 그런 사람들의 삶을 누누이 보아오면서 우리는 자신의 인생까지 별거 아니라고 단정 짓는 것은 아닌지…

그림 김인중

높은 자리에 올라가려는 사람은 많지만 그 삶을 가치 있는 것으로 채우려는 사람은 많지 않다. 그 비좁은 높은 자리를 향해 가다 보면 서로 밀치고 밟고 갈 수밖에 없다. 자기 죄를 남에게 뒤집어씌우는 뻔뻔함과 탐욕으로 얼룩진 배신을 밥 먹듯 하며 높이 높이만 오르려 한다.
하지만 높이 올라도 그 자리를 빼앗기지 않으려고 해야 할 일은 하지도 못하고 투쟁적인 일에 골몰한다. 산의 정상에 올라도 내려와야 하듯 결국에는 그 자리에서 내려와야 한다. 얼마나 별거 아닌 삶을 사는 것인가.
그가 ‘대통령 별거 있습니까’ 하고 쉽게 말한 것은 그동안 우리에게 별거 아닌 대통령만 있어 왔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국민들은 그 별거 아닌 사람들에게 또 기대를 걸고 있다. 대통령이, 정치인들이 잘해야 우리가 잘 살 거라고… 그러나 그런 기대가 얼마나 허망하게 끝났던가. 별거 아닌 정치인에게 의지하려는 사람은 인생이 별거 아닐 수밖에 없다. 인생은 별거다! 내 인생을 별거로 만들려면 그런 허망한 기대에서 벗어나 내가 할 수 있는 가치 있는 일을 찾아야 한다.

그런 일은 의외로 도처에 널려있다. 마음만 먹으면 누구와 경쟁하지 않고도 선하고 아름다운 열매를 얼마든지 맺을 수 있기에 오히려 너무 쉽고 재미있는 삶이 기다린다. 가슴에 우주를 품고 사람에 대한 한없는 사랑을 간직하며 사는 삶! 그런 인생이야말로 그 어떤 높은 자리를 품고 사는 사람보다 귀한 인생이 될 것이다.

꽃도 나무도 숲도 산들바람도 온 세상이 나를 위해 마련한 것 내 삶은 나만이 별것으로 만들어

지난여름 나는 가도 가도 가파른 길바닥만 바라보며 해남 달마산 정상을 향해 힘겹게 올라가고 있었다. 어느 순간 새소리가 들려와 눈을 들어보았더니 산은 온통 푸르른 나무들로 물들어 있었다. 산들바람에 땀을 식히는데 산새도 나뭇잎도 꽃도 나를 반겨 주었다. ‘아, 나를 맞아주려고 이 산은 수천 년 동안 나무를 키우고 꽃을 피우며 나를 기다려왔겠구나’ 산은 나를 위해 마련해 둔 이 엄청난 것들을 가슴 깊이 느껴주기를 바랐는데 나는 앞만 보며 정상만 오르려 했으니… 내 가슴은 온통 감사와 감탄으로 채워져 갔다. 나는 산과 하나가 되었다. 산길을 오르는 발걸음이 가벼워졌다. 정상에 오르니 온통 산을 덮고 있는 여름 숲은 마치 엄마의 품처럼 나를 포근히 안아주었다. 온 우주의 숨결을 만끽하며 산과 하나 될 때 진정 산에 오른 것이 아닐까.

내 삶에는 꽃도 있고 나무도 있고 숲도 있으며 산들바람도 있다. 온 세상이 나를 위해 그 귀한 것들을 마련해 놓고 있다는 것을 가슴속에 간직하기만 한다면 세상은 행복한 놀이터가 될 것이다. 세상과 하나 되어 내 가슴을 감사와 감탄으로 온통 적실 때 내 인생이 얼마나 고귀해지겠는가. 내 삶은 나만이 별것으로 만들 수 있다!

발행인 윤 학

spot_img

색 예쁘다는 눈 먼 어머니

Rawia Arroum 소설가 크리스마스 날이었다. 아침 늦은 시간까지 어머니가 방에서 나오지 않아 한참을 기다리다가 방으로 올라갔다.어머니는 침대에 앉아 있었고, 햇살이...

新聞이냐 舊聞이냐

발행인 윤 학 그림 이종상 어릴 적부터 신문을 보아왔다. 그런데 10년, 20년, 30년 신문을 보면 볼수록 신문新聞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기생에게 ‘여사’ 존칭?

김재연 前 KBS 국장 형님은 사극 연출가로 승승장구하면서도 오래도록 아버지의 인정을 받지 못했다. 그 기저에는 젊은 날의 트라우마가 자리하고 있었던...

좌절된 신의 한 수

박경민 경영컨설턴트 일본을 알자! 일제 강점기 36년간의 굴욕은 일본의 개항과 조선의 쇄국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일본만 탓할...

사슴 숨겨준 포도나무

이솝우화 사냥꾼에게 쫓기던 사슴 한 마리가포도나무 밑에 숨었다. 포도나무가 숨겨준 덕분에사냥꾼들은 사슴을 보지 못하고 지나쳤다.안심한 사슴은 포도나무 잎을 먹기 시작했다. 그때, 사냥꾼...

관련 기사

자전거 앞뒤에 아이 태우고

발행인 윤학 도쿄에서 시내버스를 탔다. 창밖으로 눈길을 끄는 장면이 있었다. 아빠는 자전거 앞뒤에 아이 한 명씩, 젊은 엄마도 한 아이를 태우고 씽씽 달린다. 무더운 여름인데도...

대통령보다 높은 군수!

발행인 윤학 중학교 졸업 후 연락이 없던 친구에게서 전화가 왔다. 고향에서 방앗간을 하고 있다며 참기름을 보낸다고 했다. 어릴 때 그의 선한 모습이 스쳐 갔다. 그...

대통령만 가르치려는 나라

발행인 윤학 교장이 마음에 들지 않게 일을 추진한 교사에게 화를 냈다. 그러자 그 교사가 교장의 뜻에만 맞춰 무리하게 일을 처리했다. 교사들과 학부모들이 들고 일어났다. 교장이...

이재용 재산 나누어 가지면!

발행인 윤 학 “이재용 구속하라!” 거리에 나부끼는 플래카드가 보인다. 침울한 표정으로 말없이 법정에 들어서던 그가 스쳐 간다. 수조 원 재산을 갖고 있지만 부러워 보이기는커녕 안쓰럽다....

나 한 사람의 힘

발행인 윤 학 하굣길 그날도 섬 아이들은 나를 슬프게 했다. 갓 전학 간 나를 ‘해남 물감자’라며 놀리는 것이었다. 해남에서 물감자가 전학 왔다는 선생님 한마디에 나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