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물 터진 에세이스쿨

곽정완

에세이스쿨 강의는 내가 알던 좋은 글에 대한 고정관념을 여지없이 깨버렸다. 읽으면 유식해질 것 같은 어려운 표현들, 이국정서가 가득해 이해하기 힘든 글이라도 교과서에 실린 유명한 작가의 글이면 글의 본질은 못 보고 감탄과 박수를 미리 준비해 왔다는 것을 깨달았다. 평소 좋다고 생각해 왔던 글도 강의를 통해 조목조목 살펴보니 포장과 허세로 가득한 나의 글과 별반 다르지 않았다. 그동안 나는 멋지게 보이려고 얕은 지식을 자랑하며 누군가의 화려한 표현을 얼마나 많이 베껴왔을까. 얼굴이 화끈거렸다. 글은 내가 살아온 삶이 그대로 드러난다는데… 나는 내 글 속에서 어떤 모습으로 드러날까? 에세이스쿨도 사실은 인생 공부인 셈이었다.

강의를 듣고 무엇을 어떻게 쓸지 생각하며 예시로 쓰여진 글쓰기 주제를 살펴보는데 막막하기만 했다. 볼펜을 빙글빙글 돌리고 화장실을 들락거리다 보니 오전이 다 가버렸다. 여전히 흰 종이에 마음은 점점 어두워졌다. 그래도 오랜만의 ‘집콕 탈출’과 ‘서울 나들이’임을 떠올리고 이 시간을 즐기기로 했다. 금방 점심시간이 왔다.

에세이스쿨은 좋은 글에 대한 고정관념 깨버려 유명 작가 글도 포장과 허세 가득하다는 걸

부드럽고 향긋한 나물 반찬과 고소한 잡곡밥을 눈감고 음미하며 맛나게 즐겼다. 글쓰기에 대한 부담을 내려놓고 나니 <흰물결갤러리>의 그림들이 보고 싶었다. 책과 그림과 음악의 나눔이 있는 흰물결아트센터에 있음이 감사했다. 코로나19로 움츠러든 일상을 깨고 에세이스쿨에 온 다른 수강생들에게도 동지애가 느껴져 정겨웠다. 점심시간이 끝나고 공연장으로 내려가 ‘아빠의 꿈’이라는 영상을 보았다. 윤 학 대표가 강조하는 삶의 가치가 더욱 선명히 느껴지면서 우리 가족의 모습이 떠올랐다.

우리 가족은 더 나은 교육환경을 찾아 강북에서 강남으로 이사했다. 교사였던 나는 대치동에 독서지도 교습소를 열었고 학원 설명회를 누비며 SKY 타령으로 아이들을 몰아세웠다. 아들이 재수 끝에 가게 된 한 지방대학 캠퍼스를 둘러보던 날, “안 다닐 이유가 없어요”라며 뜻을 굳히는 아이의 말에 나는 서울 유명 대학 캠퍼스를 떠올리며 삼수를 권하기까지 한 엄마였다. 지방에서는 최고라는 여고를 나와 범생이 기질에 학습된 우쭐함까지 있었던 나는 아이들에게 도움되는 교육이 무엇인지 진지하게 고민하기보다도 무슨 일이든 열심히 하라고 압박을 주며 좋은 결과까지 요구하는 위험한 엄마였다. 나는 아들이 주일미사에 빠지면 용돈을 깎을 정도로 신앙도 밀어붙였는데, 대학생이 된 아들은 “엄마는 내가 마음으로 하느님과 만날 수 있는 기회를 안 주었어요”라고 했다. 내가 아이들에게 지금껏 보여준 인생의 가치는 무엇이었을까?

가치 있는 것에 자꾸 노출시키세요! 가치 있는 것을 느끼며…” 그 말에 남편 떠올라 울고 말아

이런 상념에 빠져있는데 공연장 가득 아름다운 음악이 흐른다. 100년 가까이 되었다는 명품 스피커에서 흘러나오는 최상급의 소리였다. 소프라노의 맑고 아름다운 노래, 올드 팝송의 선명하고도 가슴을 울리는 선율! “가치 있는 것들에 자신을 자꾸 노출시켜야 합니다. 가치 있는 것에 의미를 두고 오늘 이 순간을 느끼며 사세요”라는 말에 나는 남편이 떠올라 울고 말았다.

10년 전, 오로지 가족과 회사밖에 모르는데 갑작스러운 인사발령으로 유배나 다름없는 지방 근무를 시작한 남편을 위해 딸이 흰물결아트센터에서 하는 공연을 예매했다. 하지만 남편은 공연 내내 웃음기 하나 없이 그저 조용히 있어서 기색을 살피느라 전전긍긍했었던 기억이 났다. 좋은 글을 쓰려면 내가 먼저 좋은 삶, 가치 있는 삶을 살아야 하고, 목표가 분명한 삶을 살 때 더 가치 있는 나를 만들 수 있다고 했는데… 아이들과 남편의 일이 아닌 나만의 목표를 세워 본 지가 언제인지 기억이 나지 않았다. 내가 나를 더 가치 있게 만들어 가면 남편도 더 아름다운 삶을 살아갈 수 있으리라 생각하니 에세이스쿨에 오기를 참 잘했다 싶었다. 나 혼자 듣기엔 너무나 아까운 흰물결 공연장의 최고의 소리를 다음번엔 남편의 손을 꼭 잡고 들으러 오리라. 음악을 찐하게 느끼며 한바탕 시원하게 웃어보리라.

곽정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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