징검다리 위의 기적
허수아 작가
그저께 갑자기 주명 씨한테서 전화가 왔다. “우리 봄 구경 가요” 난 무조건 “예” 했다. 꽃비가 내리고 꽃눈이 쌓이는 날, 주명 씨와 나는 스쿠터를 타고 북천 둑길을 달렸다. 주명 씨는 “봄 구경 나온 게 일 년만”이라고 했다. 주명 씨는 두 다리를 못 써 스쿠터가 없이는 꼼짝도 못한다. 나 역시 한쪽 다리가 불편한 장애인이지만 주명 씨 앞에서는 너무도 건강한 사람이다.
그곳에 때마침 열린 벚꽃 시화전도 덤으로 구경할 수 있어 더 신났다. 시화전에는 내가 쓴 동시도 있었다.
손가락 보험
볼 수 없는 사람 위해
손가락에 만들어 둔 눈
책도 읽고
엘리베이터도 탈 수 있어요
내가 주명 씨를 만나게 된 것은 남편 덕분이다. 남편이 쓰는 의료용 기구들이 고장 날 때마다 의료기 상사를 하는 주명 씨 남편이 와서 고쳐줬다. 한번은 아침에 이동식 리프터가 고장 나서 남편이 공중에 매달려 있었다. 그는 금세 새 건전지를 갖고 와서 남편을 공중에서 내려오게 해 주었다. 고마운 마음도 전할 겸 밥을 산 적이 있는데 그때 남편과 같이 나온 주명 씨를 처음 만난 것이다. 그날 벚꽃처럼 환했던 주명 씨가 한 말을 잊을 수가 없다. “두 다리로 걸을 수 있다는 건 얼마나 큰 축복인지 몰라요” 그 이후로 가끔씩 주명 씨 집에 가서 차를 마시며 수다를 떨기도 했다.
벚꽃 터널 사이로 꽃비를 맞으며 나란히 달리다 주명 씨가 스쿠터를 멈추었다. 주명 씨의 눈길이 가는 곳으로 내 눈길도 따라갔다. 둑 아래 냇가 징검다리 위로 한 여자가 걸어오고 있다. “저 사람 좀 봐요. 우리의 기적이네요” 맞다. 아예 걷지 못하는 주명 씨에게는 징검다리를 걸어서 건넌다는 건 기적이다. 나도 한쪽 다리에는 힘이 없으니까 징검다리를 건너기는 어려운 일이다. 전부터 그 징검다리를 꼭 한번 걸어보고 싶었다. 점점 더 가까이 걸어오는 그 사람이 누군가를 닮았다. 아! 하마터면 큰 소리로 그녀 이름을 부를 뻔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