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누구 편인가?

그림 쟌 제르드로

우리 학교 반장 부반장 일곱 명이 내 책상 앞에 몰려왔다. 일찍 입학한 나보다 나이도 많고 덩치도 큰 녀석들이었다.

“중간고사에서 한 문제 차이로 너만 상을 받게 되었어. 네가 2라고 썼다가 3으로 고친 답이 있던데 선생님께 가서 2로 쓴 거라고 하면 우리 모두 동점으로 상을 받을 수 있어. 다음 반장 선거 때는 우리가 너를 밀어줄게” 그동안 나와 점수 차가 커서 상을 한 번도 받지 못했던 녀석들은 이번엔 절호의 찬스라고 여기는 듯했다.

녀석들은 쉬는 시간이나 청소 시간이면 우리에게 회초리를 휘두를 정도로 학교에서 막강한 힘을 갖고 있어 고민이 되었다. 그들 말을 들어주면 녀석들 무리에 낄 수 있지 않은가. 청소 시간 물동이를 나를 때 한쪽을 높게 들어서 내 옷에 물을 흠뻑 쏟는 짝꿍의 괴롭힘도, 시험 때 내 등을 연필로 쿡쿡 찔러 힘들게 하는 뒷자리의 못된 짓도 멈출 것 같았다. 다 그 녀석들 비위를 맞추려고 벌이는 짓이니까. 더구나 내가 다음 학년에는 반장도 될 수 있다니… 녀석들이 나를 잘 대우해 줄 걸 생각만 해도 설렜다. 그런데 작고 어린 내가 녀석들의 말을 안 들어주면!

그날 밤새 뒤척거리다 언젠가 읽었던 글이 떠올랐다. 남북전쟁 때 링컨의 북군은 매번 패배만 하다가 큰 승리를 거두었다. 장군이 달려와 말했다. “드디어 하느님이 우리 편이 되었습니다” 그러자 링컨은 “그런 말 말게. 나는 주님께 우리 편이 돼달라고 기도하지 않고 우리가 주님 편이 되게 해달라고 기도한다네”

녀석들 편이 돼보려 했던 내가 초라하게 느껴졌다. 다음 날 나는 대표 격인 옆 반 반장을 찾아갔다. “나는 분명히 3으로 고쳤어. 선생님께 거짓말할 수는 없어” 자리에 돌아왔지만 언제 밖으로 불려 갈지 불안했다. 그런데 수업이 끝나도, 그 학기가 다 끝날 때까지도 아무 일도 없었다. 학기 말 나는 우리 학년 대표로 상을 받았다.
다음 해 나는 반 친구들의 추천으로 반장 선거에 나가 과반수의 표를 얻었다. 친구들이 내게 표를 준 것이었다. 패거리에 끼지 않아도 바른길만 가면 내 편도 많겠다는 희망이 생겼다.

왜 정치인 지지하는 것일까? ‘내 편’ 돼 주기 바라기 때문 기대 클수록 권력 집중되어 견제 균형 무너지면

그 후 수십 년이 흘렀다. 국민들은 ‘내 편’ ‘네 편’으로 갈라져 늘 싸웠다. 역대 대통령들도 주위를 ‘내 편’으로 채웠지만 결국 믿었던 ‘내 편’에 의해 쫓겨나듯 물러나는 것을 수없이 보았다. 서민 편이라는 정권이 서민을 힘들게 하고, 중산층 편이라는 정권이 중산층을 힘들게 했다. ‘내 편’은 잠시 ‘내 편’일 뿐 영원한 ‘내 편’은 없었다. 국민들은 정치인이 ‘내 편’이 되어 주겠다고만 하면 진짜 ‘내 편’으로 착각해 온 힘을 다해 지지한다. 내 표만 챙겨 가려는 정치인을 왜 지지하는 것일까? 국민들도 그 정치인이 ‘내 편’이 되어 주기를 바라기 때문일 것이다.

우리는 늘 새로운 대통령에게 기대를 건다. 정치를 잘 해, 먹고 사는 문제를 해결해 주기를, 부강하고 문화적인 나라를 만들어 주기를. 그런 기대가 클수록 ‘내 편’ 정치인이 대통령이 되기를 바란다. 그러나 수많은 반대 세력과 경쟁자들에 둘러싸여 자기 자리 지키기도 힘겨운 대통령이 국민들의 소망을 채워줄 수 있겠는가. 수많은 공약도 권력다툼에 힘쓰느라 공염불이 되는 것을 수없이 봐왔지 않은가. 이제 내가 지지하는 대통령이라도 나를 위한 ‘내 편’ 대통령이 될 거라는 기대를 접어야 한다.

권력은 이처럼 우리의 삶을 더 낫게 만드는 데는 별로 힘을 발휘하지 못한다. 오히려 권력이 커지면 커질수록 우리 삶을 더욱 위태롭게 한다. 절대권력이 국민들을 얼마나 못살게 하는지 우리는 역사를 통해 분명히 봐왔다. 견제받지 않는 권력을 행사한 히틀러나 일제를 떠올려보자. 입법, 사법까지 모두 장악한 차베스, 마두로의 베네수엘라 국민들은 지금 어떻게 살고 있는가.

대통령 선거가 다가온다. 전 정권의 패거리 정치에 대한 염증 때문에 또다시 정권교체의 바람이 불고 있다. 그에 힘입어 거침없이 입법 사법 행정을 좌지우지하려는 정치인이 대권을 눈앞에 두고 있다. 대통령이 되면 그를 견제할 세력이 과연 있는가?

전두환 정권이건, 문재인 정권이건, 윤석열 정권이건 권력의 남용과 오용이 국민들은 물론 그들 자신을 불행하게 했다. 지금 대한민국에 필요한 것은 ‘내 편’ 대통령의 당선이 아니라 권력의 견제와 균형이다. 헌법은 왜 입법 사법 행정으로 권력을 분산해 두었을까? 그 어떤 권력이든 권력이 커지면 남용하기 마련이라 권력 간에 견제와 균형을 이루어 국민을 보호하려 든 것이다. 그것이 우리 헌법이 지향하는 바다.

권력이 커질수록 우리 삶을 위태롭게 해 지금 필요한 것은 ‘내 편’ 대통령이 아니라 권력의 견제와 균형

초등학생 때 내가 녀석들 편이 되었더라면 나도 ‘내 편’인 패거리 녀석들이 주는 그 조그만 혜택에 맛 들이며 살지 않았을까. 녀석들 역시 당장 상은 받았겠지만 계속 편법에 맛 들이며 괴물로 성장했을 것이다. 녀석들이 성적까지 조작하려 들었던 것은 아무도 그들을 견제하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권력이 한 사람에게 집중되어 입법 사법 행정 간의 견제와 균형이 무너지면 어떤 일이 벌어지던가. 견제받지 않는 권력은 자의적으로 권력을 행사하고 싶은 유혹을 이기지 못하고 더욱 ‘내 편’을 키우는 데만 힘을 쏟게 된다. 결국 또다시 불행한 대통령, 불행한 국민이 될 수밖에 없다. 그럼에도 우리는 ‘내 편’ 후보에게 열광만 하고 있으니…

‘내 편’이 대통령이 되어야 한다는 기대를 접을 때 대한민국이 보이고 대한민국 ‘편’에 서게 된다. 이제 대통령이 ‘내 편’이 되게 해달라고 기도할지, 내가 대한민국 편에 서게 해달라고 기도할지 선택할 때다. 링컨의 말을 다시 새겨본다. ‘하느님께 내 편이 돼달라고 기도하지 말고 내가 하느님 편에 서게 해달라고 기도한다’

발행인 윤 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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