흰물결이 만난 사람
손봉수 前 하이트진로 사장
맥주공장에서 핵심적인 일을 맡으셨다면서요
제가 차장 달고 품질관리팀장으로 전주공장에 발령받았는데 생산총괄 상무가 저를 못 믿고 일 자체를 안 주는 거예요. 당시 박사학위 받았다고 참 핍박을 많이 받았죠.(웃음)
서울에서 같이 내려갔던 과장과 저 둘만 옥상으로 부르길래 가보니 굉장히 큰 술 탱크가 있어요. 높이 한 30m 정도 되는 원통형 탱크가 옥외라 비도 맞고 곰팡이도 피고 굉장히 더러울 거 아닙니까? “너희 둘은 오늘부터 이 탱크 외벽 청소를 한다” 그래요. 제조과 현장 직원들 일인 데다 그 직원들한테도 외벽 청소하라고 시킨 적이 없거든요. 저희는 명색이 품질관리 팀장, 과장인데 품질관리 일은 하나도 못 하고 출근하자마자 봉걸레 들고 장화 신고 비옷 입고 하루 종일 탱크를 청소했어요. 낮에 탱크 닦고 있으면 그 상무가 저 멀리서 우리가 일 하나 안 하나 쳐다보고 내려가는 거예요. 어찌나 얄밉던지. 품질관리 팀장이 탱크 닦은 사람은 하이트 맥주에서 나 혼자일 겁니다.(웃음)
어느 날 청소 다 끝나고 나니까 그 상무가 맥주를 이 잔 저 잔 따라놓고 “술맛을 보고 골라내 봐” 하는 거예요. 몇 달에 걸쳐 테스트를 해보더니 제가 잘 맞췄나 봐요. “내일부터는 여과주 선정하는 거 자네가 하게. 자네한테 품질의 모든 권한을 준다” 하더라고요. 그분이 제가 모신 분 중에 제일 맛을 잘 보는 분이었어요. 맥주공장에서는 무서운 소리입니다. 시어머니가 며느리에게 곳간 열쇠 주는 거와 같은 거예요.
고속 승진을 하셨으니 동료들의 시기, 질투도 많았겠어요
전주 공장에서 6개월 만에 부장 진급했을 때 욕을 많이 먹었어요. 공장장이 전남 사람이었는데 그 양반이 아끼는 광주 출신 차장 한 명이 있었어요. 그 사람을 부장시키려고 회장한테 친필로 편지까지 썼다더라고요. 공장에서는 모두들 그 사람이 부장된다고 생각했는데 차장 된 지도 얼마 안된 제가 부장으로 발표가 난 거예요.
보통 진급하면 축하한다며 승진 회식도 시켜주는데 공장장이 하루가 지나도 부르질 않아요. 축하 파티는커녕 진급 신고도 안 해주는 거예요. 안 되겠다 싶어 인사하러 갔어요. 들어가서 90도로 인사하고 “공장장님! 진급시켜 주셔서 대단히 감사합니다” 했더니 다리 꼬고 앉아서 “야, 나 너 추천 안 했어. 가!” 첫마디가 딱 이래요. 앉으라는 소리도 없고 그냥 쫓겨 나왔어요.
미워하던 분들에게까지도 신뢰받게 되는 비결이 궁금해요
회장 측근 한 분이 저한테 “손 사장~ 회장이 너 참 좋아하더라” 그래요. 제가 구매총괄 사장을 맡고 있을 때였는데 회장이 “손 사장은 믿을 수 있잖아” 칭찬하더래요.
구매총괄 사장은 어느 회사든 정말 심복만 앉힙니다. 그럼에도 2, 3년 있으면 다 감사에 들어가고 문제 있으면 해고시키고요. 구매총괄 사장이 아주 폼 나는 것처럼 보여도 명줄이 짧아요. 그런데 저는 은퇴할 때까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