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명지 교사
딸 가족이 주중에 여행을 간다고 한다. 나는 대뜸 물었다. “아이 학교는 안 가고?” 체험 학습 신청하면 결석이 아니란다. 학교를 빠지고 무슨 여행을 하느냐 하자, 요즘 ‘개근 거지’라는 말이 있다고 했다. 여행을 못 가서 하루도 학교를 결석하지 않는, 아니 못하는 아이를 놀리는 말이란다. 나는 세상이 변한 줄도 모르고 있던 것이다. 무슨 일이 있어도 학교를 빠지면 안 된다는 우리 세대의 생각은 시대에 뒤떨어진 것일까? 체험 학습, 여행의 가치를 모르는 바 아니나, 나는 이 새로운 풍조에 고개가 끄덕여지지 않았다.
초등학교 졸업식 때 우리 반 순영이는 다른 상은 받지 못했지만 6년 개근상을 받았다. 그때의 분위기는 무언지 모를 숙연함이 있었다. 최우수 성적상을 받은 아이 때보다 더 큰 박수 소리가 터져 나왔다. 선생님도 성적 최우수상을 탄 아이보다 더 칭찬해 주셨다. 순영이는 유난히 학교에서 멀리 떨어진 산비탈에 사는 친구였다. 비바람 눈보라 치는 날에는 걷기도 힘든 곳인 데다 순영이는 몸도 약한 편이었다. 그런데 그녀는 6년간 하루도 결석하지 않았다. 어린 마음에도 그녀가 참 존경스러웠다.
나는 외삼촌 결혼식에 따라가느라 학교를 하루 빠졌던 것이 8살이었음에도 두고두고 후회스러웠다. 그 후 중학교 졸업식에서 받은 삼 년 개근상은 내가 받은 어떤 상보다 뿌듯했다. 아파도 참고 결석하지 않은 것이 스스로 자랑스러웠다. 어려움을 참고 견디는 훈련이 된 것이다. 그때 학생에게 학교는 그 무엇보다 중요한 가치였다. 자기가 맡은 ‘주된 자리’를 성실하게 지키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배웠다. 아마 6년 개근을 한 순영이는 평생 아무리 힘든 일도 이겨가며 제 자리를 지키며 살아갈 것이다. 그런데 이제는 개근이 조롱거리가 되다니.
한 친구의 초등학생 손주가 학기 중에 7박 8일 해외여행을 마치고 온 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