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방 속의 유산

고금례 소아과원장

오늘 같이 안개비가 내리는 일요일 오후엔 좋아하는 클래식 음악을 듣는다. 아버지가 클래식 음악을 자주 들으시니 나도 자연스레 가까워졌다.
내가 의과대학에 입학하여 서울로 올라간 후에는 아버지로부터 거의 일주일이 멀다 하고 편지가 왔다. 방학하여 집으로 내려갈 때면 아버지는 당시 제주에서 구하지 못하는 클래식 음악 레코드판, 예를 들면 ‘포레의 진혼곡’ 등을 사 오라고 편지를 하곤 하셨다.

「너도 이제는 대학 생활이나 도시 생활이 어떤 것인지, 기숙사 생활이 어떤 것인지 이해하고 있는 중일테지.
학교 간판만을 얻기 위하여 공부도 아니 하면서 대학에 다니는 것은 한국 사회에서나 볼 수 있는 현상이 아닌가 싶다. 대학이란 높고 원대한 이상을 꿈꾸며 인생에 부여된 사명을 연구하는 곳이기도 하다. 그러니 대학 6년간 계획을 세워 독서를 하여라. 의예과 과정은 종교, 철학, 문학, 예술, 윤리학 등의 교양학을 공부하여 인간미를 갖추는 시기일 것이다. 아무리 전공에 탁월하다 할지라도 인간미가 없으면 사막과 같지 않겠느냐? 이 점을 잘 생각하여 보석보다도 비싼 ‘혼’의 고전을 읽어라. 고전은 선현들이 일생을 통하여 피와 눈물로써 만든 혼의 결정체이다. 언제 읽어도 좋지만 젊었을 때 읽어두는 것이 매우 긴요하다. 하루하루가 자기의 ‘사람됨’을 빚는 과정임을 자각하고 뜻있게 대학 생활을 보내줄 것을 부탁한다.
물론 운동도 하고 건전하게 놀기도 해야 한다. 재삼재사 말하지만 공부도 계획을 세워서 무리하지 말고 꾸준히 일정한 속도로 행하여라. 또한 건강 각별히 유의하거라. 아버지 씀」

‘아무리 전공에 탁월하다 할지라도 인간미가 없으면 사막과 같지 않겠느냐? 하루하루가 자기의 ‘사람됨’을 빚는 과정임을 자각하고 뜻있게 보내라’

의대 본과 1학년이 되어 해부학 실습이 두려워 아버지께 학교에 안 다니겠다는 편지를 드린 적이 있다.

아버지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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